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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Aug 04. 2022

헤어질 결심

내 사랑하는 커피집

빨간 얼굴의 총각이 만드는 커피는 맛이 좋았다. 그가 조그만 공간에서 아침마다 커피를 직접 볶고 무게를 재어 담고 잠깐씩 쉴 때마다 책을 들고 있는 것이 좋았다. 카페의 한쪽 벽을 책장으로 만들어 빼곡하게 채워 넣은 책들이 좋았다. 그가 골라 사온 책과 내가 들고 온 책들이 같을 때가 많았다. 좋아하는 시인의 새 시집이 나오면 당연한 듯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툭하면 책을 빌려 오고 툭하면 읽은 책을 나누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흘러나오는 음악이 내 핸드폰의 플레이리스트와 비슷했다, 선우정아와 최백호, 강아솔과 산울림, 아델이나 세르지오 멘데스, 자미로콰이. 가끔 조용필이나 나미를 틀면 손님 몇몇은 슬쩍 나가곤 했다.

영화를 보고 오면 총각도 보았을 게 틀림없을 영화를 난도질하거나 추앙하며 수다를 떨 생각에 약속시간보다 일찍 카페에 갔다. 레이디버드, 프란시스하, 패터슨, 콜미바이유어네임, 드라이브마이카... 수많은 영화들과 노아바움벡부터 홍상수, 그레타거윅과 짐자무쉬, 박찬욱과 웨스앤더슨 수많은 감독들을 이야기했다.

단짝이니 남친이니 애인이라고 부르는 친구는 내가 읽는 책이나 영화엔 전혀 관심이 없어서 크리스틴이나 이브, 엘리오나 가후쿠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게 여학교의 단짝 친구 같았던 서른여덟의 여드름쟁이 총각.

오랜만에 단골 카페에 가 앉지도 못한 채로 또 한바탕 그간 쌓인 수다를 떨었는데 이제 그만이란다.


사라진다고, 마침내.


자신의 가게 커피 한 잔의 단가가 천이백 원인데 주변에 우후죽순으로 생긴 이천 원 저가 커피에 밀려 도저히 버티기 힘들다고. 일주일 전 가게를 내놓았다고 한다.

십여 년 세월이 한바탕 꿈이었던 것 같다고.

지난겨울에 이제는 영영 봄이 올 것 같지 않다고 울먹대더니 결국은 일이 이렇게 되고야 말았다.


이름조차 "봄이와" 인 나의 작은 카페.

나에게도 꿈같은 시절이었다. 아쉽다는 말로는 부족한 나의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내가 또 마음을 너무 주었었나,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스러지고 사라졌으니.

이번엔 너의 차례로구나.

오늘 함께 떠들었던 책은 공교롭게도,

"헤어질 결심" 각본집이다.


그렇게 되었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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