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이 걷는 낮에 대하여
세상에, 창문을 열었다가 놀랐다.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렇다면 어쩌지, 여름이 그새 가버린 걸까. 여름을 좋아한다. 환한 낮을 사랑 한다. 붉은 하늘의 끝에서 끝까지 창에 기대어 오래도록 보는 것을, 더운 여름의 숨이 뺨에 닿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가 푸르스름한 저녁이 늦게늦게 오는 것.
낮이 짧은 계절이 나는 싫다. 가을에 벌써 겨울을 떠올린다. 겨울은 내게 밤이다.
가을의 길들은 물기 없이 마른 것 같다. 나는 자주 그런 길을 목적 없이 걷는 사람이 된다. 나무 아래 매미의 사체를 지나기도 하고 군데군데 공사 중인 아스팔트 길을 걸어서 강과 만나는 천변의 식물들을 들여다보며 하염없이 걷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 같다. 바삭한 햇빛은 나를 잊어버리게 한다. 익숙하지만 생각지 않았던 거리에서 정신이 드는 순간, 다리가 아프고 온 길을 다시 되짚어가기에 겁이 나는 때, 낮이 짧은 계절의 저녁이다.
파란불이 켜진 저녁의 하늘은 안다. 게으른 아침과 명랑한 낮과 버릇이 된 과장된 후회가 있는 밤을. 여름이 준 것들을 거기에 서서 세어 본다. 그리고 오늘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서늘한 공기, 밤을 길게 하는 오늘 빗방울들을 오래오래 본다.
어쩌지, 이제는 밤을 사랑해볼까. 무엇을 골라서 좋아하기에 아주 좋은 것들은 이제 너무 조금 남은 것을 알기에.
이유를 만들자, 이를테면 두꺼비집 따위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인덕션의 불을 쓸 수 있고 물 한병 없이도 강 건너 단골 카페에까지 오래도록 걸을 수 있으니까. 밤에 마실 빨간 포도주가 가게마다 넘쳐나니까. 그 정도면 아주 나쁘지는 않으니까.
아 그래도 여름이 가는 것은 정말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