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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Nov 25. 2022

속절없이

이별하는 방법

“오시면 주문받을까요?”

빨강 얼굴의 총각이 묻는다.

오신다는 친구는 오늘은 없다, 시아버지 기일이라 성묘 지내러 갔다. 그러니까 오늘 나는 이상하게 혼자 여기 오고 싶었던 거다.

“봄이와”

내 사랑하는 작은 카페.

북카페도 아닌데 공간은 영화 포스터와 그림이 걸려 있는 벽을 빼곤 눈 닿는 곳마다 책이 쌓여 있다.

유리문을 내다본다.

봄에는 카페 앞 오래된 벚꽃나무가 소나기처럼 꽃눈을 날려주던 문이다. 여름에는 벌레를 무서워하는 주인 총각 대신 테니스채처럼 생긴 물건으로 모기나 초파리를 잡아주던 문이고. 가을에는 빨간 단풍이 회오리 치며 옆으로 달려가고 눈이 오는 날도 이 유리문 앞에서 눈을 발로 차거나 눈덩이를 만들어 던지고 눈사람을 세워 두었었다.


유리문 밖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컴퓨터로 성의 없이 쓴 문장을 프린트해서 붙여 놓은 낯 선 종이가 붙어 있다.

“25일까지만 영업합니다”

가게가 나갔단다.

여름에 가게를 내놨단 말에 놀랐지만 들릴 때마다 보러 오는 사람 하나가 없다고 내년 봄까지 할 것 같다고 해서 방심했었나 보다. 금요일까지만 영업한다는 이야기를 얼굴이 더 빨개진 사장 총각이 한숨을 쉬어 가며 한다.


”아니 가게가 나갔으면 문자라도 줬어야지요. “

핀잔 아닌 투정을 부리니 그렇잖아도 막 그러려던 참이었다고. 갑자기 일이 되려니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었다고 이 자리엔 프랜차이즈 주스 매장이 들어온다고 했다.


아침에 꽃망울이 달려 있는 동백에 물 스프레이를 해주고 트리의 고장 난 전구를 빼어 휴지통에 넣다가 몸살을 앓다 잎을 다 떨어뜨리고 있는 떡갈 고무나무에 눈이 갔다. 마트에서 무릎만 하던 것이 씩씩하게 자라 천장에까지 키가 닿던 녀석이었다. 전에 설던 집은 그렇게나 식물이 잘 자라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너무 건조해서인지 누렇게 변한 잎을 하나 둘 떨어뜨리다 이젠 녀석은 아주 작은 줄기 하나만 남기고 볼품이 없다.

속절없다. 담겨 있기엔 너무 커다란 화분이라 장갑 낀 손톱에 흙이 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흙을 파냈다. 흙을 쓰레기봉투에 담고 화분은 재활용장에 가져다 놓고 작은 토분에 겨우 잎을 달고 있는 녀석의 줄기 하나만 다시 심어 놓았다.


카페엔 책을 너무 오래 돌려주지 못해 미안해서 그려주었던 내 그림이 걸려 있다.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해도 발길이 닿을 것 같지 않은데 곧 모두 철거한다고 한다. 저 작은 그림도 쓰레기차에 실려 사라지겠지.

카페의 구석 하나하나 한숨을 쉬며 천천히 돌아보는 내게 눈이 빨개져서 총각은 십 년만 다른 일을 하고 다시 커피집을 내고 싶다고 한다.

아주 조그만 줄기, 정말로 십 년후에 빨간 얼굴 총각이 봄이와를 또 열면 나도 다시 한번쯤 가고 싶다.


화분을 창가로 가져와 창을 열어주고 물을 주었다. 화분에 너무 커다란 돌을 얹어 놓으며 이 돌이 어울릴 만큼 크라고 중얼거린다. 아주 없어지지는 말라고. 그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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