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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Dec 03. 2022

그렇게 생겼다

김장하는 날

안 그렇게 생겼다고 했다.

어제 김장에 들어갈 채소들과 양념들을 사러 친구와 재래시장에 갔다. 친구와 나는 늘 같은 날 김장을 해서 일찍 같이 장을 보고 오후에는 김장 전날의 이상한 긴장감을 즐기며 맛있는 걸 사 먹는다.

전에는 합정의 프렌치 식당에서 브런치를 자주 먹었다. 그 식당이 와인바로 바뀌고 우린 시장 근처의 맛집들을 찾아다녔다.

어제는 그마저 귀찮아 자주 가던 옛 동네의 시장으로 갔다. 청갓과 다발무, 마늘과 양파, 생강과 멸치액젓, 쪽파와 배, 생새우와 굴, 북어머리와 다시마, 새우젓과 양파, 수육용 통삼겹살을 사고 나오다 시장 끝에서 너무나 파릇한 섬초를 지나치지 못하고 나란히 한 근씩 샀다. 끙끙대며 차에 싣고 만장일치로 가끔 가던 즉석떡볶이 집으로 갔다.  

쫄면과 계란, 오뎅 사리를 더한 떡볶이 이인분이

끓는 동안 우리는 얇고도 노란 단무지 한 그릇을 거의 다 집어 먹고서 떡볶이 국물 하나 남김없이 싹싹 비운 프라이팬을 두고 나왔다. 카페 봄이와가 있던 자리엔 나무판으로 가림막을 설치하고 공사 중이라 주변에 있는 커피집에 갔다


어디 다녀와요?

내일 김장이라 장 보고 왔어요

어머 김장을 다해요?

네 해야죠

“진짜 안 그렇게 생겼는데 대단하시네요”

나보다 너 댓살은 많을 아이라인 짙게 그린 그녀가 말한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선 푸릇푸릇한 채소들의 냄새가 나고 지하주차장에 있는 커다란 카트에 장본 것을 싣고 집으로 들어와 제일 먼저 생새우를 살살 씻어서 냉장고에 넣었다. 저녁 준비를 하기 전에 사 온 것을 분류하고 씻고 다듬어서 씻어 놓은 김치통에 나눠 담아 넣어두었다.

닭볶음탕을 해서 저녁을 먹고 치우고 쪽파를 다듬기 시작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사실은 우리 층의 주부 모임이 있는 날인데 나는 김장이라 바빠서 참석하기 힘들다고 하고 모임 장소인 실내정원 테라스에 조각 케이크를 사다 두고 왔었다.

마늘을 갈고 파를 다듬는 중이라 집안에 매운 냄새가  났다.


김장하세요?

네, 못 나가서 죄송해요

아유 안 그렇게 생기셔서 김장을 직접 하세요?

아.. 네


참 많이 들었다. 그런 말.

안 그렇게 생기셔서.


난 어떻게 생겼지?

거울을 보니 얼굴은 퉁퉁 부어 빨갛고 희끗한 머리칼을 하나로 묶고 머리칼 떨어질까 봐서 머리띠를 하고 서 있는 아줌마가 있다.


그렇게 생겼다. 아니면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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