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인 것들
예정대로 남겨 둔 쪽파로 파전을 부쳤다. 냉동고를 털어 오징어와 바지락살과 새우를, 냉장실에선 호박과 양파를 조금 꺼냈다.
밀가루에 마늘 반 톨 소금 조금과 설탕 반티스푼을 넣고 찬물을 부어 주르륵 묽게 반죽한 것을 달군 프라이팬에 넓게 펴놓고 그 위에 쪽파를 그 위에 바지락살과 오징어, 새우를 흩뿌리고 반죽과 계란 푼 것을 얹어 부친다.
가스불 주변으로 기름이 튀고 지글지글 고소한 냄새가 난다. 쪽파 가장자리가 누르스름하게 되기 직전 뒤집어 누른다. 기름을 돌돌돌 더 두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양파를 잘라 식초와 간장, 고춧가루 조금과 물을 넣어 각자의 종지에 덜어 놓고 드디어 막걸리 개봉.
탄산이 튀어 올라 넘치기 전에 뚜껑을 열고 닫으며 병 속의 막걸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반복하다가 반드시 샴페인 잔에 따라 놓는다. 넘칠 듯 부글거리던 탄산이 가라앉고 갓 담은 파김치와 흰밥 조금, 일인 일파전이 식탁에 놓이고 이런 아주 별것도 아닌 것들이 웃게 하는 저녁이 사랑스럽다.
어제 오후 제대한 지 열흘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했었다. 아침에 전철을 타고 교회를 다녀오고도 일어나길 기다리다 혼자 밥을 먹고도 두 시가 다 되도록 침대에 들어 있는 아이가 한심했나 보다.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제발 좀 일어나라고 소리를 질렀었다. 아닌 밤중에 아이는 놀라 아이대로 제발 신경 좀 쓰지 말라고 대거리를 했다.
참 못되고 성급하기도 하지. 눈물을 흘리며 참회의 기도를 하면 뭘 하는가, 내 마음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이런 사달을 내는 모자란 것인 걸.
남자아이와의 다툼은 이게 다다. 잘못한 걸 알지만 나는 자존심에 아이에게 말 한마디 더 하지 않은 채 식탁을 차려 놓고 아이도 말 한마디 더 하지 않고 차려놓은 것을 대충 먹고 나가버렸다.
파김치의 매운 내가 진동할 때 귀가한 아이와 나는 한마디 말도 눈빛도 마주치지 않았다.
오늘 오후 여지없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이는 아침도 먹지 않고 말 한마디 안 하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갔다. 눈으로만 책을 읽던 내가 애가 나간 쪽을 바라보며 입으로 욕을 뱉으려는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아이가 다시 들어와 나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만나러 나갔다 올게” 내 몸을 안았던 손을 풀고 다시 뛰어 나갔다.
내 아이가 나보다 너그럽게 자란 것이 고맙다.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셨는데 얼굴이 빨개진 아이가 웃는다. 해물파전 너무 맛있다고. 엄마가 파김치를 누구 때문에 한 건지 알고 있다고.
내가 먹고 싶어 한 것이란 말은 안 했다.
“엄마 밖에 없지, 좀 잘해라”라고 좀 부끄러운 심정으로 하지만 아주 뻔뻔하게 말하며 아이의 잔에 내 잔을 부딪히고 웃었다. 이런 저녁이 언제까지일까. 일단은 생각하지 않고 행복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