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나 많던 모임들
”아빠가 무슨 모임이 그렇게 있었겠어 “
친구는 결혼을 하면서 한 번도 떠나 본 적 없는 전주를 떠났다고 했다. 몇 년을 매주 선을 보러 다니다가 지금의 남편과 삼 개월 만에 결혼했고 그 길로 서울에 올라와 홍제동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꾸렸다. 결혼을 하고 난 후 친정아버지가 툭하면 오셨다고 한다. 모임이 있어 서울에 왔는데 잠깐 얼굴이나 보러 오시겠다고 하셨다고. 그리고 정말 잠깐 얼굴만 보시고는 그 길로 내려가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가시고 나면 동네 과일 가게와 정육점, 슈퍼나 중국집 주인들이 아버지가 얼마씩의 돈을 미리 맡겨 두셨다며 과일이며 고기 등을 가져가라고 했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평생을 전주에서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가 서울에 모임이, 게다가 그렇게 자주 있었을 리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결혼한 딸의 안색을 살피러 그렇게 자주 오셨을 아버지.
그랬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동네 작은 커피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친구의 전화벨이 자주 울렸고 “어, 아빠...”로 시작되는 전화통화는 다정하고 살뜰했다.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아빠라고 부를 사람이 있는 것이, 하루도 빠짐없이 딸에게 전화해 별것 없는 일상을 묻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딸의 살림을 돌아보고 기분을 살피던 친구의 아버지는 지금은 사위를 아들처럼 생각하시며 딸과 번갈아가며 전화를 하신다.
바닷가 카페 창 밖으로 거센 파도를 배경으로 빗방울이 옆으로 누워 내린다.
아직 백일도 되지 않은 아가 쌍둥이가 할아버지와 아빠의 품에 안겨 들어왔다. 앳된 엄마와 피곤해 보이는 할머니가 따라 들어오고. 목도 잘 못 가누면서 할아버지 마스크 줄을 꼭 쥐고 눈을 맞추는 아가가 정말이지 너무나 예쁘다. 왈츠를 추듯 살짝 흔들며 리듬을 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 평온과 감격이 가득하다.
아마 내게도 그때 아빠가 있었으면 우리 아이들을 저렇게 품에 안았겠지. 나한테 그랬듯 잠이 든 아이를 안아 자리에 눕혔겠지. 괜히 울려 놓고 웃었겠지,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진땀을 흘렸겠지. 그리고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