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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Jan 29. 2023

무용한 것에 끌린다

고양이 사다리

고양이 사다리라는 게 있다. 하찮은 인간의 집안으로 자신만만하게 드나드는 고양이님을 배려하려는 예비 집사들의 공공연하면서도 또 은밀한 노력이랄까. 장난감이 어지러운 앞마당부터 혹은 커다란 화단에서 기다랗게 발코니와 창으로 이어진 사다리들.

벽과 같은 색으로 지붕과 같은 재료로 직선으로 혹은 지그재그로, 리듬을 살려 마주 보는 형태로 배려있게 만들어진 그것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하다. 아주 작은 수고와 아주 짧은 고민을 통해 발명(!)된 다양한 사다리들. 하지만 사실 고양이는 그것 없이도 빗물통과 수도꼭지와 자전거와 덧창을 이용해 휘리릭 지붕까지 올라 다닐 것이므로 사랑스럽게도 그게 얼마나 유용할지 알 수 없다.


고양이 사다리를 찍은 많은 사진들에 이상하리만치 고양이가 없는 것은 정말 고양이다운 일. 고양이가 수시로 드나든다 해도 누가 고양이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으리. 꽃밭에서 놀기를 좋아해 내가 춘자라고 부르는 고양이를 옆 동 경비아저씨는 그저 나비라고 부르며 밥을 준다. 아마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유럽의 고양이들도 여러 개의 이름을 가졌을 거다.


고양이사다리를 찍어 놓았을 뿐인 책을 단지 귀여워서 샀다. 고양이나 고양이사다리나 그것을 찍어 놓은 사진책이나 모두 같은 것 같다. 무용하지만 그저 귀여워서 옆에 놓고 싶어 하는 것. 그러나 그것보다 더 "쓸모"있는 게 또 얼마나 되려나 싶다.


나는 실용적인 것보다 귀여운 것에 끌린다. 사실 귀엽기만 하다면야 오히려 쓰임새가 기막히게 적을수록 좋아한다. 기울이면 뚜껑이 먼저 열리며 데구루루 굴러가는 찻주전자라든지 단 한 번 튀어 오르고 다시 상자에 담으면 구겨져 비뚤게 흔들리는 허술한 스프링 인형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눈도 잘 오지 않는 부산 같은 곳에서 굳이 눈오리틀을 사는 귀여운 사람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쓸데없는 생일 선물 하기가 유행이라 아이들 서랍장 위나  책상 아래에 콩나물재배기, 오재미 박터뜨리기, 유아용 모래그림판 같은 것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그것들이 귀여워서 책들은 가져다 버려도 청소할 때마다 먼지를 털어주곤 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 무용하고 귀여운 것들에 기댄다. 팽팽 돌아가는 일상과 혁신을 거듭하는 사회 속에서 쓸모가 없어서 오히려 쓸만한 것들이 나는 좋다. 고양이사다리처럼.


그리고


내가 너무 좋아하는 노래, 하덕규의 고양이


그대는 정말 아름답군 고양이

빛나는 두 눈이며 새하얗게 세운 수염도

그대는 정말 보드랍군 고양이

창틀 위를 오르내릴 때도 아무런 소릴 내지 않고


때때로 허공을 휘젓는 귀여운 발톱은

누구에게도 누구에게도 부끄럽진 않을 테지

캄캄한 밤중에도 넘어지지 않는 그 보드라운 발

슬픔 없는 두 눈 너무너무 좋을 테지


그대는 정말 아름답군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높은 곳에서 춤춰도 어지럽지 않은

아픔 없는 눈 슬픔 없는 꼬리 너무너무 좋을 테지

캄캄한 밤중에도 넘어지지 않는

그 보드라운 발 슬픔 없는 두 눈 너무너무 좋을 테지

때때로 허공을 휘젓는 귀여운 발톱은

누구에게도 누구에게도 부끄럽진 않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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