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걸 생각하자
일 없이 휴대폰의 앨범을 보다가 어느 날의 사진에 눈이 머물렀다. 사방 커튼을 친 창문은 어둑하고 소파엔 아무도 없고 살짝 세워진 침대에 주렁주렁 무언가가 달려 있고 누운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수건을 적셔 들고 오던 길이던가 아니면 얇게 저민 배를 냉동실에서 꺼내오던 중이었을 거다.
뒤척이는 소리도 없이 납작하게 야윈 환자는 침대에 가려 얕은 숨을 쉬고 있고 보호자가 앉을 만한 의자는 멀어서 내내 그 옆에 서 있었다. 환자와 내가 가끔 짧은 대화를 하고 마른 손이나 다리를 쓰다듬고 기력이 다한 환자대신 나 혼자 우스갯소리를 하던 커다란 방. 아주 한참 지난 일도 아닌데 아주 먼 곳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내가. 아이들은 그 사이 다 커버렸고 내 삶을 통제하던 어른들은 이제 세상에 없다.
시간이 나는 대로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도 간다. 잘 정돈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는다. 아침 일찍 영화관에 간다. 오후엔 가끔 낮잠을 잔다.
그런데 마음이 온전히 편치가 않다.
아 이런 마음이 들 땐 좋은 것을 생각해야 해.
무표정으로 색동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나, 친구 뒤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 친구 품에 파고들어 웃고 있는 내 사진을 본다. 아침에 구멍 난 양말로 정성껏 잎을 닦아 준 식물들, 아이의 야구유니폼이 걸린 건조대, 싹싹 닦아 햇빛에 내놓은 하얀 쓰레기통, 내가 좋아서 처음으로 산 그림들, 봄날의 하조대, 아직 택이 달려 있는 원피스 같은 것을 생각한다.
분명 멋을 잔뜩 부리고 나올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길. 사놓고 비가 자주 와서 신지 못했던 운동화를 신고 가야지.
어둡고 적막하던 병실에도 가끔 알록달록한 운동화가 필요했었다고 생각하면서. 자주 나와 환자는 눈을 맞추고 웃었다는 걸 기억하면서.
오늘 날씨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