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의 생존법칙
이탈리아 돌로미티에 와 있다. 해발 2000미터 이상의 산들을 곤돌라나 리프트를 타고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지팡이를 짚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 중턱의 좁은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가득하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의 180도 회전하며 오르다 보면 몇 시간이나 걸린다. 이곳의 도로는 산의 모양을 따라 일 차선 도로로 이어져 있다. 무리하게 긴 터널을 만들거나 넓은 길을 닦아서 산의 모양을 훼손하지 않는다. 도로는 산과 닮았고 겨우 뚫어 놓은 터널은 신호에 따라 몇 대씩 번갈아 가며 통과한다.
운이 좋은 건지 어떤 건지 도로는 붐비지 않고 날씨는 더없이 환하다. 빽빽한 침엽수가 서로 키를 맞춘 듯 나란한 산들 위에 흰 바위 산이 바람의 일이 이렇다는 듯 서로 다르게 뾰족한 봉우리를 이고 서있다. 겨울에는 스키 리프트로 사용하는 곤돌라나 쿠니쿨라들이 많지 않은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다. 몇 번이고 일어서게 만드는 풍경들은 사실 산꼭대기에 내려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사진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담기지 않는 거대하고도 장엄한 자연, 평화로운 햇빛과 평등한 바람이 말문을 막히게 한다. 저 눈앞의 바위 산과 초원, 게으르게 풀을 뜯는 소와 말들, 컴퓨터 초기화면에서나 본 넓고 먼 풍경은 내가 혹시 AI가 만든 어떤 공간에 비츄얼기기를 눈에 얹고 선 게 아닌가 싶도록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얇은 반팔티 위에 혹시나 해서 가져간 경량패딩을 입고 산 꼭대기의 휴게소에서 맥주를 주문했다. 소가 핥은 듯한 헤어스타일의 어린 직원에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의 한국어를 알려주는 동안 등 뒤에 산에는 흰 구름이 생겼고 소들은 방울을 울리며 다른 목초지로 이동했다.
나무들은 어떻게 저리 나란한가. 같은 이발소에 한날한시에 몰려가 자른 듯 길이와 잎들은 단정하다. 나무들은 가까이에 심겨 있어도 서로의 가지를 침범하지 않고 자란다고 들었다. 그런 걸까. 눈앞의 나무들은 빽빽하지만 한결같고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고 자란다. 나무들의 생존법칙은 그런가 보다. 서로 방해하지 않고 너무 애쓰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질투하지 않는 것. 서로의 그늘을 존중하고 햇빛을 나눠 갖고 오래 살고 나면 노랗게 잎을 달고 숨을 고르다 저물어 간다. 그렇게 벌목된 나무들이 길 가까이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생의 주기처럼 무대에서 내려와 아무 저항 없이 저물어 사라지는 일. 나무는 오래전부터 해온 일인 듯싶다.
아들의 피를 수혈받으며 이십 대의 신체를 갖게 된 어느 백만장자의 이야기가 소름 끼치던 것은 자연스럽지 않아서였다. 서로의 햇빛을 탐내지 않고 빗방울을 뺏지 않고 키를 맞추어 자라고 어느 날 누렇게 변한 잎을 휴식의 신호로 내보내고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나는 나무들처럼 잘 저물고 싶다. 인색하지 않고 늘 평화롭게. 자전거를 타고 숨을 헐떡이며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곤돌라를 질투하지 않는 것처럼.
그새 완벽한 발음으로 이탈리아청년이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한다. 안녕!이라고 인사하며 돌아선다. 이곳에서의 내 시간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편안히 지났다. 다정한 나무들의 살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