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도 돼
세체다 트레킹의 시작점인 마을, 오르티세이에서 점심을 먹던 날이었다. 평점이 높은 피자집에 들어가 피자와 샐러드 파스타를 시켰다. 와인은 친절하고 명랑한 젊은 사장에게 추천해 달라고 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옆 테이블에 동양인여자아이 하나가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주문을 받으러 오던 직원이 여자아이가 계속 메뉴판을 보고 휴대폰으로 검색하고 사진을 찍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 몇 번씩이나 주방 쪽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왔다. 오래 기다려도 아이가 결정을 못하는 것 같아선지 직원은 다가가서 자신이 추천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인상을 쓰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인상과 옷차림새는 우리나라 아이 같았는데 말을 하지 않으니 테이블이 붙어 있어도 알 수 없었다. 음식과 와인은 훌륭했다. 우리가 나온 음식을 반쯤 먹었을 때야 아이는 주문을 했다. 나는 눈이라도 마주치면 이 먼 데서 만났으니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아이는 미간에 인상을 쓴 그대로 빠르게 나온 음식을 먹기만 했다. 힘들게 시간과 비용을 만들어 왔을 텐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창 밖의 투명한 햇빛도 꽃들도 보지 않고 화난 사람처럼 자신의 앞에 놓인 커다란 피자를 먹고 있었다. 구겨 넣듯이, 억지로 턱에 힘을 주어 질긴 무엇을 씹는 것처럼.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나 불안하게 했을까. 안타까웠다. 어느 한 곳에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들지도 않고 인상을 쓰고 해치워야 할 일인 것처럼 음식을 먹는 아이의 표정이 숙소에 들어와서도 내내 생각이 났다.
이곳은 트레킹 하는 이들이 많다. 높은 산악지역에 바위산과 목초지, 숲이 어우러져 있어 등산화와 등산복차림으로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산과 마을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아이도 그런 차림이었다. 혼자 몇 시간을 걷고 갈림길마다 이정표를 보면서 목적지로 이동했으리라. 세체다 정상에서 중간 리프트승강장까지만 걸어볼까 하던 나와 남편은 길을 잘못 들어 다섯 시간이나 걸어 오르티세이로 내려와야 했다. 생각보다 길 찾기가 쉽지 않았고 경사가 급하고 작은 돌이 깔린 길이 미끄러워 걷기에 힘들었다. 다시 올라가는 길이 훨씬 빠른 길임을 알아도 내려온 길이 험해 그렇게 하기 힘들었다. 사이좋게 손을 잡고 내려오던 우리도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을 오래 걷는 동안 말도 하지 않고 나는 내 조언을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앞서서 걸어가는 남편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하고 자갈길을 미끄러지며 내려가다가 어제 본 그 아이가 생각이 났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를 걷고 있을까.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나도 길을 잘못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움이 끼쳤다. 조금 전까지 예뻤던 들꽃도 눈이 아프게 파랗던 하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온몸으로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밀어내고 있던 아이, 웃음기가 하나도 없이 무표정한, 아니 화가 나있는 듯한 그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 스스로를 외로움에 가두게 만든 것이 무엇일까. 가만가만히 웃어주었으면 나았으려나. 걱정만 많은 아줌마가 괜한 걱정을 또 만들어하고 있다고 우스개라도 건넬 것을 그랬나.
다섯 시간 동안 무릎이 뻐근해지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도록 가파른 길을 내려왔다. 세 시간 정도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집들이, 창고가 나타나고 동네묘지를 지나 사람들을 만나자 완전히 마음이 놓였다. 남편과도 다시 손을 잡고 길가의 카페에 앉았다. 시원한 물을 한 컵 들이켜던 사이 나는 그 아이를 잊었다. 그리고 지금 어디를 또 걷고 있더라도 아이에게 손잡을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그녀 자신의 손이었으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