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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Jun 06. 2022

너같은 딸

지는 게임



    "엄마, 장어 드시러 갈까?"

엄마는 혼자 사신다. 삼십 년 전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몇 년후 내가, 또 곧바로 동생이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났다. 동생은 결혼 전에도 직장이 있는 지방에 가 있었기때문에 엄마가 혼자 산 세월은 더 길 것이다. 혼자 새벽기도를 가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운동장을 돌고 혼자 잠을 자는 엄마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겁다. 특히나 이런 전염병의 시대라니. 면역력이라도 보강해드리자는 생각으로 강화도에나 다녀오자고 했다.  

"고마워, 딸"

"뭘,또"

"좋아하는 걸 먹자니 염치없이 ㅋㅋ "


    엄마가 장어만큼이나 좋아하는 참외를 사들고 엄마집에 갔더니 열무김치랑 깍두기가 조그만 김치통에 든 채로 거실에 나와 있다. 괜찮다는 내게 기어이 얼마나 익었는지 맛을 보라며 깍두기 하나를 입에 넣어 준다. 말리지 않은 생고추를 갈아서 양념을 만들고 미나리를 넣은 봄깍두기는 예쁜데다 간이 딱 맞다. 바로 꺼내 고봉밥을 먹고 싶을 만큼 잘 익었다. 열무김치는 보나마나다.

"너무 맛있어, 엄마"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엄마는 거실에 꺼내 놓은 김치통을 기어이 열어 내입에 넣어 주었을 것이다.

옷을 갈아입는 엄마를 기다리며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를 여니 커다란 김치통 두개가 꽁꽁 싸매져서 놓여 있다.


     엄마는 얼마전 내가 아울렛에서 사서 보낸 페이즐리무늬의 화려한 점퍼를 입고 손가방을 들고 나섰다. 사위 앞에서 새옷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할까봐 나는 입술에 손가락을 슬쩍 대었다 떼었다.       


     주말 나들이는 우리만 나온 것이 아니라서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에 가는 차들이 몇 킬로씩 밀려 있었다. 예상한 시간보다 늦어져 배가 너무 고팠다. 드디어 초벌되어 나온 커다랗고 두꺼운 장어가 숯불 위에서 잘리고 윤기있게 구워진다. 엄마는 아이처럼 익어가는 장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생강채를 얹어 소금에만 절인 깻잎장아찌와 함께 먹는 장어는 고소하고 담백하다. 장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엄마 접시에 구워진 장어를 자꾸 얹는다.

"장모님 참 잘 드셔"

나는 대답 대신 괜히 식당에서 틀어 놓은 티비 속  트로트가수들 이야기를 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봄빛이 사방에 가득하다. 엄마는 봄과 잘 어울린다.

    잘 드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는 엄마가 건강하신 것이 얼마나 나에게 기쁜일인지 남편은 모른다. 엄마는 갑작스런 아빠의 죽음에 놀라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한쪽 청력을 거의 잃었다. 한쪽 귀로만 듣느라 다른 한쪽 귀의 청력도 서서히 나빠져서 대화를 하다가도 어색하고 엉뚱한 반응을 하곤 했다. 그걸 또 눈치채고서 얼마나 실망을 하는지 수술이든 시술이든 청력을 찾게 해드리고 싶었다. 보청기는 절대로 싫다고 하셨지만 뭘 하든 검사는 꼭 필요했다. 나는 그와중에도 번갈아가며 암수술을 하시는 시어른들 수발에 정신이 없었다. 아버님의 두 번째 간절제 수술을 끝내고 곧장 엄마를 모시고 신촌의 대학병원에 다녔다. 시어른들이 차례로 돌아가신 후 작년 봄에는 엄마 몸에 지방종이 생겨 수술을 하셔야 했다. 처음으로 환자복을 입고 수술을 하게 된 엄마는 아기처럼 놀라 벌벌 떨었다. 귀가 어두운 엄마와 함께 의사 선생님과 검사실 선생님들을 만나고 혼자서 간병을 했다.


"엄마 지금 아프심 엄마 딸 죽어"

내가 시어른들 병수발로 사십대를 몽땅 흘려보내던 시절 나는 엄마에게 말했었다.

엄마는 어쩌면 필사적으로 병을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둥글게 휘어진 해안선을 따라 바닷물이 빠진 갯벌위로 갈대숲이 아름답다.

"야, 정말 멋있다"

"그치, 참 좋다"

"너도 너같은 딸이 있어야하는데"

팥빙수를 먹으러 간 커다란 카페에 앉아 나를 보며 엄마가 웃는다. 황사도 없이 오늘은 유난히 하늘도 파랗다. 모시고 나오기를 잘했다, 더 자주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빨간 하트가 매달려 있는 엄마의 휴대폰이 울린다. 단번에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목소리가 바뀐다.

"엄마 혼자 맛있는 거 먹어서 어떡해, ......그래, 그래 바쁠텐데 전화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엄마 아들의 전화다.


    "너같은 딸"인 나는 남편의 얼굴을 살피며 피식 웃는다.

오늘도 나는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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