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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냐 Jun 28. 2022

여름을 좋아해

장마까지도

여름을 좋아한다.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한낮, 한나절을 실외 주차장에 세워  차 안을 좋아한다. 앗 뜨거워 하면서 차 안에 앉아서 후하후하  뜨거움을 들숨과 날숨으로 기꺼워한다. 물론  에어컨을 틀지만. 손이 닿는 곳에 꽃들이 많은 계절. 담마다 덩굴장미와 능소화가, 창가에는 제라늄이,  걷는 천변에는 금계화와 엉겅퀴, 그리고 데이지. 살짝 한송이쯤 손에 들고 다녀도 미안하지 않을 만큼 흐드러진 여름.


어린날에도 그랬었나? 여름을 지금만큼 사랑했었나? 대청마루에 누워 돌아가는 파란색 선풍기 날개 아래서 세계명작 같은  읽다가 주머니에 동전이 잡히면 학교 가는 길로 내달렸다. ""이라고 쓰여있던 파랗고 빨간 물레가 달려 있는 기계에 싸라락싸라락(사라락아님) 얼음이 갈리는 걸 보며 팥과 미숫가루와 빨간색 시럽을 뿌린 (젤리는 빼고 ) 빙수. 알록달록한 파란 플라스틱 빙수 그릇을 두 손으로 받아 들고 내 눈은 얼마나 반짝거렸던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 데미안이나 첫사랑 같은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할머니 들으라고 카세트엔 "수퍼사운드" 시사 영어 테이프를 틀어만 놓고.

 

섭씨 30도. 지금도 나는 사람들이 실내로 모두 들어가 버린 카페테라스에서 적당히 달구어진 철제의자에 앉아 끄적거리는 중이다. 옆에서 같이 벌을 서고 있는 남편은 망고빙수를 먹고 있고.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그리고 장마, 호우주의보. 여름에, 어른이 되어 다행스러운 일을 꼽으라면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리라. 비가 오는 창문 앞에서 또르륵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기다란 와인잔을 들고 홀짝거릴 수 있는 기쁨. 햇빛을 걷다 들어와 축축한 티셔츠를 벗고 속옷 차림으로 서서 냉장고의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캔을 따서 마시는 한 모금의 맥주는 또 어떤가.

변하는 것 없이 제자리에서 가만가만히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 내가 잘하는 일.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나의 취향은 바뀐 적이 없다. 같은 곳을, 같은 것을 깊이 사랑한다. 누군가 좋음에도 자격이라는 게 있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고 했었는데. 내게는 아무런 떳떳한 자격이 없지만,


여름에는 나는 아무것도 버릴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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