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밥

할머니의 일대기

by 미냐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젊은 여자아이의 종아리에 기다란 실밥이 붙어 있다. 종종걸음을 치며 걸어가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실밥을 떼어주었다. 고맙다고 웃으며 인사하는 아이의 얼굴을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실오라기라도, 아주 미미한 실수라도 남이 알아채는 일을 싫어하는 시대다, 그걸 돕는다는 말로 참견하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


언젠가 친구가 길을 걷다 치맛자락이 말려 올라가 속옷이 다 보이는 여자아이를 보았다고, 놀라서 다가가 치맛자락을 정리해 주었다가 낭패를 보았다고 했다. 딸 같은 마음에 스스럼없이 다가가 옷정리를 해주었을 뿐인데 그 아이는 무안한 마음을 화를 내는 것으로 풀어버린 모양이었다. 옆에 팔짱을 낀 남자친구에게 부끄러웠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엉덩이가 다 보이도록 말려 올라간 치마를 어찌 두고 볼까. 친구는 다신 누군가 불구덩이에 들어가더라도 그래 네가 한 번 데어봐라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했다.


앞에 선 이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고 임산부석이니 노약자석이 없어도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던 때는 다 지났다. 길에서 무거운 짐이라도 맞든다 하면 아마도 불쾌한 사람이 되고 말지 모른다.

외할머님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참 놀라웠던 것이 있다. 할머님은 주식회사를 설립한 할아버지를 따라 함경도에 정착하셨다. 퇴근해 오신 할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가 레코드를 틀어 놓고 근사한 찻잔에 차 한 잔을 따라 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재미나게 살엇다”고 하셨다. 잠시의 평화가 지나고 러일전쟁의 여파로 가진 것을 채 정리하지 못하고 성북동으로 오셨고 이후 전쟁이 나 이천으로 소래로 인천으로 옮겨 다니셨다. 그 사이 가진 것을 다 잃고 젖먹이를 안고 걸려 이리까지 파난을 갔다 수복소식에 다시 올라왔다가 할아버지마저 끌려가시고 말았다. 총을 맞아 다 죽어가는 남편을 주검들 속에서 겨우 찾아 이불솜을 뜯어 소독약만으로 돌보며 1.4 후퇴를 겪으셨다. 사람 사는 일이라서 그 와중에도 아이를 둘이나 낳으셨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싶었는데 그 전쟁통에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고 누울 자리 하나가 급해도 지나가던 노인의 수레가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돕고 함께 피난 가던 애엄마가 애를 받고 산구완을 해주고 방을 내어주고 자신의 아이들과 똑같이 아이들을 돌보아주었다.

절망이 발끝에 닿을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함께 있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 자기 한 몸 건사도 힘든데 어린 자식과 산모와 다친 이웃과 그 아이들을 챙겼다. 피난길에서도 애를 낳는 것이 어렵지가 않았다. 걷지 못하는 남을 굶은 몸으로 부축하여 함께 걷고 밥 해 먹을 그릇과 불을 빌려주었다.

눈을 감고 싶을 만큼 끔찍한 날들이 다가왔을 때마다 평범한 사람들은 신기할 만큼 따뜻한 도움을 주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딱 한 주가 지났을 뿐인데 전동차의 사람들이 창 밖을 보거나 속닥이고 휴대폰을 본다. 대부분 팔짱을 끼고 고갤 숙여 잠들어 있던 지난주와 풍경이 많이 다르다. 누군가 나를 도와줄 거라는 믿음에서 삶은 든든하고 떳떳해진다. 실밥을 떼어주는 일조차 주저하게 되는 사회는 슬프다.

날이 뿌옇다, 오후엔 따뜻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