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말고는 뛰지 말아라

김용택시인과의 작고 행복한 시간

by 미냐

벚꽃여행의 마지막 날, 오전 11시 22분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함께 윤석열 파면선고를 들었다. 악양도서관 옆 편의점으로 가서 하나 남은 브륏와인을 사 평사리공원으로 달려갔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힘껏 와인을 흔들어 마개를 땄다. 튀어 오르는 우리의 함성과 기쁨의 눈물.

백사장에 앉아 이런 날이 왔구나, 정말로 이제는 봄이구나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꿈속 같은 순간, 꼭 그런 것 같은 풍경 속에 한참 담겨 있다가 일어났다. 의자들을 접고 돗자리를 털어 접어 넣고서 차에 탔다. 갈 곳이 있었다.

목적지는 < 김용택시인문학관>

작년에 우연히 마주친 시인의 쾌활하고 정겨운 모습에 우리는 홀딱 반해 서울로 가기 전에 들러 가기로 계획했었다. 마침 시인의 새책이 난다에서 출판되어 나는 여행에 오기 전 미리 친구들 책까지 주문해 두었다.


<사랑말고는 뛰지 말아라>


신간 출간 후 작은 책방들을 다니시며 북토크를 하시던 것을 보아 알아서 아마도 댁에 계시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럼 못 뵙게 되기 쉽겠다고 생각하며 임실 장안면의 느티나무길로 들어왔다. 무더위 쉼터 옆에 차를 세우고 살살 걸어 들어가니 시인님이 나와 풀을 정리하고 계신다, 옆에 사모님이 먼저 모자를 들어 올리시며 웃으신다.

인사를 하니 시인이 놀라 올려다본다.

바지를 털며 고무털신을 신은 시인이 일어나 저기로 가자며 앞장섰다.

생가 건물, 작년에 거기서 우연히 뵙고 한참 얘기를 나눴었다.

작년에 꼭 다시 오라고 그러셔서 왔어요 하니


그래? 기억이 안 나는데? 하신다.


아니, 작년에 저희 갈 때 그렇게 손을 흔드시고 따라오셔서 길도 가르쳐 주시면서 내년에 꼭 와 하시더니 배신감이^^


작년에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고 우리는 차례차례 시인의 새시집에 싸인을 받았다.


저 느티나무 좀 봐 예쁘지?


지난해에 갔을 땐 느티나무의 잎이 달리기 전이어서 시인은 그때도 저 나무에 잎이 나오면 그렇게 이뻐 라며 자랑하셨다. 명동성당에서 본 은행나무 이야기를 하니 마당 가운데 심겨 있던 자리를 가리키시며 이야기를 하신다.


저 나무 하나 때문에 다른 나무를 심을 수가 없어

올해는 잎이 이쁘게 났어, 저렇게 되면 한 해 날씨가 좋아서 농사가 잘 된다.


나무를 건너 보시던 시인이


아, 요즘 새들이 아주 바빠, 짝짓느라 희한한 소리를 내, 첨 들어 보는 소리야, 삐이하고 아주 이쁜 소리를 내더라고.


저만치 마을 앞 천을 내려다보다가,


저 번엔 오리들이 막 싸워, 한 다섯 마리가 한 마리를 두고 싸우는 거 같더라고, 거의 하루를 그렇게 싸우더니 나중에 보니 둘이 둘이 풀 숲에서 놀더라니까.


까지 하나가 큰 감나무 위에 지은 집에서 나와 날았다가 들어갔다.


까치가 겨울부터 집을 지었어, 얼마나 예쁘게 지었는지 몰라. 입에 뭘 물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해, 제일 좋아하는 게 감나무가지야, 깃털 같은 거를 물고 그렇게 드나들더라고, 아마 저기 알 몇 개 낳아놨을걸?


시인은 높은 데 동그렇게 놓인 새집을 올려다보았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


시인님 너무 젊으시네, 청년처럼 나왔어요


아이구 지랄한다


우리 나이를 물으시곤 내년에는 함께 간 친구의 딸이 결혼한다고 하자


이렇다니까 참, 야 니가 시집 가겄다.


우린 다 같이 웃었지만 사진 속 시인은 정말 청년같이 젊다. 지난해 보다 조금 야위긴 했어도 웃는 눈이 애기반달 같다.


그러면서도

여자들이 오십이 넘으면 거 뭐랄까 달라, 소녀티가 사라져.

아니었으려나, 잠깐 시인의 얼굴은 조금은 쓸쓸해져 보였다.


이제 가라


벗어놓은 털고무신을 내려다보며 시인이 말했다


네 저희 이제 상록수에 가요


어디? 아, 거기 창우네? 이 사람들 거기 간다네, 창우네. 아내에게 걸어가시며 웃으신다.

아직도 풀숲을 정리하느라 쭈그리고 일하시던 사모님이 일어나셨다, 아직도 소녀티가 남아 있는 사모님께 우리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아무래도 내년에 또 가게 생겼다.

내년에 꼭 와, 새 시집 나온다


내년엔 기억을 하시려나? 시인이 작년 삼월에 어딜 그리 다니냐며 놀리던 그 아줌씨들이 우리라는 것을.

그래도 내년에도 조금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우리를 맞아 주었으면 좋겠다. 분명 그러시겠지.

올해도 시인은 또 우리에게 단단히 반하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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