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겐 살아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증명. 공명하고 있다는 감각. 자신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는 증거가.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가장 손 쉬운 길은 운명론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주하는 일상을 자신과 만나기 위해 운명 지어진 아름다운 피조물이라 생각하고 인연을 맺는다. 그 것은 때때로 장소가, 사람이, 사물과 동물로 대상을 바꾸어 다가오며 모든 것은 그녀와 만나기 위해 지난한 과거를 지나 마침내 당도한 것이다. 그녀 자신처럼.
그 만남을 사랑하는 그녀는 온 사방에 냄새를 맡으며 현재를 감각했고 자신에게 입력하기 위해 끊임없이 표현을 만들어 냈다. 누군가 에게는 매일 지나치는 출근길이, 누군가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버려진 사물이, 그녀에겐 각자의 사연을 품은 동지가 되어 찾아왔다.
그녀는 새로운 운명을 위해 낯선 장소를 찾아갔고 의도적으로 길을 잃었다. 지도를 보지 않고 발 길과 시선이 머무는 대로 흘러 흘러 찾아간 곳에서 마주한 것들은 대체로 골목에 서있는 녹슨 자전거,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보라색 공기, 털이 서는 한기, 누군가가 휘갈기고 떠난 낙서, 버려진 휴지조각에 물든 핏자국,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혹은 이미 떠난 자의 기록, 찰나의 애정으로 사람의 숨결이 닿았으나 이내 버려지고만 동물과 식물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그 사물들을 자신과 동일시 했다. 애처로운 눈길로 마주하고 있을 때면 풍경이 말을 걸었다.
‘안녕? 처음 보는 애네. 난 여기 살아. 넌 어디에서 왔니?’
그 무심한 인사말은 외로움의 냄새를 풍기는 자에게만 닿을 수 있는 온기였다.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또다시 관계를 찾아 헤매는 처절함. 그녀는 그런 곳을 찾아 마음 한 조각을 살며시 놓고 왔다. 후에 길을 다시 잃었을 때 자신이 기억할 수 있도록.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부스러기처럼 자신도 누군가에게 알아차려 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나는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는 강박과 원인 모를 불안에 차오를 때면 길을 나선다. 망각을 위한 자극을 찾아서. 내가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껴질 때 그 짙은 무기력함에서 나를 건져 올리는 것은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무엇이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을 택했다. 내가 마주하는 일상을 특별한 사건으로 대하는 것.
나는 지도를 보지 못하는 지독한 방향치이자 길치 이기 때문에 오히려 길을 잃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애초에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는다. 한 방향을 찍어 그 곳으로 나아가기만 할 뿐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는다. 당최 동쪽인지, 서쪽인지 알 길이 없고 길을 찾아 나서는 순간 공포와 혼란 속에 휩싸인 나약한 자신을 발견할 뿐이기 때문에. (지척에 있는 코벤트 가든을 2시간동안 찾아 헤맨 악몽 같던 어느 날을 끝으로 나는 길찾기를 포기했다) 나는 고개를 처박고 핸드폰의 지도를 보기를 거부하고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행이 끝나고 사진을 둘러보다 문득 깨달았다. 대단한 명소보다 이름 모를 곳에서 남긴 기록들이 더욱 선명하게 남아 나 자신을 매우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특정한 곳을 찾아가기 위한 경유지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던 장소가 사진으로 나의 마음에 기록되었을 때 나만 아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 그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방향을 잡아가다 보면 어느 새 낯선 곳에 발 딛고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난처해 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이의 손에 이끌린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가 닿은 곳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낯선 곳도 꽤나 근사한 곳이 될 수 있다.
하나의 골목길이 목적지를 찾아 스쳐 지나가는 장소가 될 수도 있고 나와 마주한 특별한 사연이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선택하기 나름이다. 돌아가는 챗바퀴 위에서 숨을 허덕이며 계단을 오르는 햄스터가 될 지,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 잠시 쉬어가는 참새가 될 지는.
미지의 세계로의 확장,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 의무감의 이름으로 묶인 사슬을 풀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은 퍽 사소하고 거대한 몸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