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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U Jan 02. 2020

신도시의 첫인상과 잔상.

유럽의 어느 도시처럼 높이가 낮은 3층짜리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 레스토랑, 빈티지 소품을 진열해놓은 잡화점, 의자 세 개로 꽉 차있는 미용실 같은 상점들이 오밀조밀 귀엽다. 이 곳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의 소란스러움보다 일찌감치 하루를 마무리하는 고즈넉함이 더 어울린다. 소소한 일상을 꾸며가는 사람들이 모여든 동네. 여기에 산다면 아침에 일어나 집 앞 까페에서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을 즐기며 하루를 시작하고 출출할 때 언제든 편하게 갈 수 있는 내 입맛에 맞는 집밥 음식점도 쉽사리 찾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한 블록 걸어나가면 폭이 넓은 8차선의 도로가 있고 대형 프렌차이즈 가게들이 즐비하여 무언가 생활의 편리함도 가까운데 있다고 느껴진다. 반대편으로 한 블록 뒤에는 내천이 있어 산책을 일삼을 수 있다. 

아. 이 곳이다. 내가 살고 싶은 동네는. 


신도시 A에 내가 처음 방문하여 느낀 것은 바로 그런 안락함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평생 자란 내게 눈이 번쩍 뜨이는 깔끔함과 소담스러움이 마음에 쏙 들었다. 훗날 언젠가 이런 곳에 살고 싶다고 마음 먹었다. 친구의 집들이 방문차 신도시 B를 방문하였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신도시 A와 정확하게 같은 스타일의 건물들, 도로, 신호등. 심지어 대형 가게들까지 빼다 박은 듯 많은 것이 닮아있는 그 곳에서 나는 혼란스러움을 금할 길 없었다. 내친김에 교외로 나가보자는 친구의 말에 그 맞은편 신도시 C로 갔는데, 이럴 수가. 이 곳에도 있었다. 내 마음을 빼앗은 하늘이 보이는 키 작은 건물들도, 근접한 곳에 있는 대형 프렌차이즈 건물들도, 심지어 입점해 있는 빵집과 슈퍼마켓의 상호까지 모든 것이 세트처럼 동일했다. 뒤통수 맞았네. 내가 처음보고 반한 그 동네의 분위기는 도시와 다른 한적함이었는데,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껍데기만 좋은 허울로 보인다. 



서울에는 동네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세월이 쌓아간 삶의 흔적과 발자취들. 그것들은 각자의 도시에 차곡차곡 덧입혀져 다양한 매력을 발산한다. 벽에 금이 가고 간판이 죄다 떨어졌지만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맛집이 많은 종로의 한 골목, 잡화를 만드는 공장들 근처, 새로 생긴 서울 숲을 기점으로 오밀조밀 가게들이 늘어선 성수동, 쉽게 찾아올 수 없는 불편한 교통편 덕분에 타 지역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일본인들이 주로 모여 살아 맛있는 우동과 스시를 먹을 수 있는 동부이촌동.. 각자의 도시는 그 취향에 맞는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사람들은 비슷한 향수를 지닌 이웃과 어울려 지낸다. 

소유한 아파트의 가격이 자신이 가진 가장 빛나는 명함이 되고 평수에 따라 사는 수준을 나누어 버리는 한없이 좁아진 시야에 갇힌 사람들. 각자가 가진 개성을 서둘러 지워버리고 깔끔하고 높은 하얀 성벽을 쌓기 바쁜 사람들의 지독한 개인주의를 바라보며 도시들은 내가 여기 있노라고 소리친다. 


언덕이 많아 항상 헉헉거리며 제발 평지에 살고 싶다고 중얼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 쉬는 나에게, 한없이 오래되어 벽에는 누런 녹물이 흘러내리는 옛 여관이, 가을이 되면 코를 막고 발 밑에 쏟아진 냄새 고약한 핵폭탄 같은 은행들을 밟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지만 결국에 두 개쯤 신발 밑창에 들러붙어있는 상황이,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한다. 


‘복에 겨운 소리 하네! 우리가 버틴 시간의 무게를 인간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거 같아? 있을 때 잘하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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