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했던 직업상담사
2014년이었나요.
졸업을 앞두고, 잘하고 있던 화학을 엎어버리고
‘이제 뭐 먹고 살지?’라는 생각만 가득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문득, 학교에서 취업상담을 받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막 알아보다가 ‘직업상담사나 해볼까?’ 싶었죠.
학력도, 나이도 제한이 없는 조건이더라고요.
나처럼 진로 고민을 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는 아주 막연한 마음으로
직업상담사 2급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꽤 재미있었습니다.
이과생이었던 제가 난생처음 접한 심리학과 상담학. 의외로 흥미가 생겼습니다.
공부하면서 상담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고, 훈련 상담을 받으러 갔던 직업훈련기관 안내데스크에서 일하고 있던 직업상담사를 보며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일하겠지?’
괜히 설레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간절했습니다.
시험 공부를 무슨 고시생처럼 했고, 실기 시험이 끝난 뒤 긴장이 풀려 토할 정도로
절박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자격증 합격 후, 어찌어찌 누구보다 빠르게 직업훈련기관에 취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입직 전의 그 간절함은
취업과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직업상담사의 모습과는 달랐고, 사회초년생으로서 처음 마주한 사회생활의 쓴맛은
생각보다 훨씬 썼습니다.
‘제대로 된 직업상담을 해보고 싶다’는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0개월 후, 취업성공패키지 직업상담사를 시작하며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게 직업상담이구나
무릎을 탁 쳤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이 흘렀습니다.
어린 나이에 취성패 지사장도 해보고,
가고 싶던 대학에도 진학해 보고,
지자체 사업, 스타트업까지 경험해 봤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꽤 잘 흘러가는 커리어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 계속 같은 질문이 맴돌았습니다.
‘이게 맞나?’ ‘이게 정말 직업상담사인가?’
상담이라는 일 자체는 분명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시장 구조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고,
취업지원 제도의 문제점도 점점 또렷해졌습니다.
-형식적인 업무, 성과 중심의 평가,
-상담의 질보다 숫자가 더 중요해지는 현실.
-직업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
어느 순간
‘나는 상담사가 아니라 성과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저 역시 불만과 불평이 쌓여갔습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연봉 받자고내가 그렇게 열심히 달려온 걸까?’
‘화학 전공을 살렸다면 적어도 연봉 4천으로 시작했을 텐데…’
전공을 살리지 못했다는 후회,
석·박사를 따고 연봉 7천을 받는 친구들을 보며 느끼는부러움과 열등감,그리고 자격지심.
참 나약한 생각을 수없이 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잘 되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10년이 흘렀습니다.
10년 동안정말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상담은 재미있다.그런데 제대로 해보고 싶다.
회사를 옮겨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구나.
그래도 이 일이 싫지는 않다.
직업상담사로 성공할 수는 없을까?
왜 꼭 이렇게 해야만 할까?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그 끝에서 또 다른 간절함이 생겼습니다.
‘나만의 직업상담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
‘진짜 직업상담사가 되자’는 간절함.
10년 전, 막연히 직업상담사가 되고 싶었던 마음에서
이제는 ‘어떤 직업상담사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지점까지. 오래 걸렸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누구인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조금은 분명해졌습니다.
여러분의 지금 그 간절함, 부디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간절함은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줍니다.
이 시장에 들어오는 순간, 간절함은 사라집니다.
그러다 문득
‘내 간절함은 어디로 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 질문들이 쌓이고 쌓이면,
또 다른 간절함이 우리를 더 단단한 직업상담사로 만들어 줄 거라 믿습니다.
직업상담 시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부터 바뀌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