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기억이 있나요?
12월 21일 토요일 점심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엄마 아빠와 둘째 작은아버지 부부, 막내 작은아버지 부부, 사촌고모 (아빠의 사촌동생)그리고 고종사촌동생이 멤버다.
여기서 일을 하는 사람은 사촌 동생뿐인데 우리는 토요일에 모인다. 사촌동생은 사실 깍두기로 끼워준 멤버이기 때문에 그녀의 스케줄을 고려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왜 토요일이란 말인가?
이유는 딱 하나다. 사촌고모는 내가 아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녀에게 내가 아팠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실이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 당연히 주말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자궁경부암 3기, 유방암 1기 환우이다. 내가 2개의 암과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가족은 친오빠뿐이다. 두 번째 암에 대한 이야기를 오빠에게 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할까 말까 해야할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은 꽤 길었다.고민의 시간은 길어졌고, 친오빠에게 조차 나는 모든 수술과 치료가 끝난 후 말할 수 있었다. 물론 나 혼자서 견뎌냈던 치료과정과 마음 고생은 물론 쉽지 않았다. 말하지 않을까도 고민 했지만, 그래서 내게도 이 힘든 마음을 나눌 단 한명의 가족은 필요했다. 우리는 나의 두 번째 암에 대해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비밀은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기로 굳게 다짐했다. 나의 두번째 암은 엄마와 아빠 남은 여생을 불행속에서 살게 할 일이라는 것이 동의 했다.
사실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나의 투병사실을 알리는 것은 내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떤 일을 하세요? 라는 질문 뒤에 따라오는 다음 질문은 아직 젊은데 왜 일을 쉬고 있느냐 질문인 경우가 많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어요. 라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나의 투병사실은 내가 나쁜 짓을 해서 받은 벌도 아니고, 그저 길 가다 우연히 당한 교통사고처럼 내게 온 것이었다.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솔직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 나의 암 소식은 할 수만 있다면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아픈 기억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지인 누군가가 나의 건강을 묻고, 염려하고, 괜찮은지 추측하는 행위가 엄마는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암환자라는 기억은 영원히 엄마의 마음속에 묻었다고 했다. 입 밖으로 내기조차 두렵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암이라는 단어. 그 단어를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끔찍하게 싫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의 비밀을 지키기로 했다.
물론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알고 있다. 작은아버지들, 작은어머니들, 그리고 사촌동생들. 하지만 그 외 친척들은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외가 식구들은 막내이모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나의 투병사실을 알지 못한다. 막내이모에게는 엄마가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엄마도 누군가에게는 털어놓을 대나무숲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일 년에 몇 번씩이나 국내로 해외로 여행을 다니는데, 엄마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아니 그 집 딸은 어떻게 그렇게 여행을 자주, 오래갈 수 있어? 회사에서 안 잘려?
엄마는 웃으며 대답을 했다고 했다.
-우리 딸은 좋은 회사에 다녀서 휴가가 엄청 많대. 그래서 그렇게 길게, 자주 여행을 갈 수가 있다네
눈하나 깜빡이지 않으며 매일매일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어느 때에는 답답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냥 다 말해 버리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엄마가 그게 좋다면, 엄마가 그게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됐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을 자처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은 비밀이기에 이런 글을 빌어 내 뱉어본다.
난 반려암 2개를 토닥이며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