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인터뷰 - 자비로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용서한 경험?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by naniverse

자비로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용서한 경험이 있나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누구가에게 단단히 화가 나야한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다지 화가 날 일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화가 나려면 나를 단단히 기만하던지, 무시하던지, 배려가 없는 행동을 하던지 그런 일들을 해야 할 텐데

파이어 후 지속할 필요가 없는 인간관계를 거의 다 정리해서 그런지, 나의 고약한 심보를 건드리는 일 또는 말을 하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을 하기 위해 굳이 찾아보자면, 며칠 전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

오랫만에 새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새언니와는 그다지 친하지도 그렇다고 사이가 나쁘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보통의 시누이-올케사이다.

개인적인 연락이 오는 일은 조카를 봐달라고 하거나, 조카가 할말이 있어 엄마 핸드폰을 빌려 연락하는 일 말고는 거의 없다.

그렇기에 전화벨이 울리면 무슨일이 있나?????? 하면 의아해하며 받게 된다.


자기야~ ( 나를 자기라고 부른다 )

자기 그 유방외과 병원말이야, 교수님 성함이 뭐였지???


하….심장이 빨리뛰기 시작하며 머릿속에 든 생각은 “ 또야? ”


친한 지인이 유방암 2기 또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도 할 수 없어 항암치료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다른 병원도 가보고 싶어서 어떤 교수님이 좋을지 찾고 있다고 하며, 내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교수님을 알려달라는 것이 요지였다.

작년이었나? 같은 전화를 받은적이 있다.

오빠를 제외하고 가족 모두에게 유방암 이야기를 비밀로 하고 있던 터라 언니의 전화는 나를 몹시 당황하게 했다.


**병원, ***교수님이예요. 근데 언니 저 아픈거 알고 있었어요?? 오빠한테 들었어요??


내가 아픈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치료과정에 대해 글을 쓰고 있던 블로그를 봤고,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이미 2번쨰 암으로 수술과 치료를 받은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언니는 이렇게 물어봤다.


자기야~

내 친구 **이 알지…걔가 유방암이래…그래서 자기 치료받은 교수님 성함 좀 물어보고 싶은데


질문 앞, 뒤 어디에도 나를 향한 위로, 배려는 조금도 없었다.

가족보다 더 친한 친구, 지인의 암진단으로 당황하고 걱정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물어볼 곳이 나밖에 없었을 상황 또한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그래도 암환자에게 저런 질문을 하려면 최소한 이런 정도의 안부는 물었어야 하지 않았을지

사실 너 아픈 것 알고 있었어.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 동안 얘기 못꺼냈어.

혼자 수술받고 치료받고 얼마나 힘들었니. 지금은 괜찮아?

그런데 말이야………….물어볼 것이 있어.


이게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도리 또는 예의였다.

아직 완치판정조차 받지 못한 암환자에게 최소한의 저런 안부도 없이 정보만을 캐묻는 전화는, 잔잔한 나의 투병생활에 참 큰 파동을 일으켰다.

가족들의 위로가 필요없어 투병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간절하고 간절하다.

벌써 4번쨰 수술을 앞둔 내게 가족들의 관심과 걱정, 위로, 케어는 사실 누구보다 간절하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면서 시작된 나의 가족들의 고통을 내가 감내할 수 없어 그저 조용히 혼자 이겨내고 있는 중이야.

물론 이런 이야기를 새언니에게 공유한 것은 아니기에 그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설사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배려는 좀 있었으면 어땠을지……참 아쉬웠다.


사람에게 준 애정은 되돌아 오기를 바라면 실망밖에 남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준 애정은 내 것이 아니니 받길 바래서는 안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연민조차 없는 저런 전화를 받을 때는 사실 무너져버린다.

가족이기 때문에 관계를 정리할 수 없고, 가족이기 때문에 인연을 이어나가야 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100% 솔직하게 이야기조차 할 수 없다.


사실 이번 이야기는 화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대단히 큰 상처를 받았고, 그녀를 용서하기 보다는 그녀를 포기해버린 이야기다.

그래, 새언니는 늘 저런 사람이었지 라고 포기해버리고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아야 내가 그녀의 가족으로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저 또 이렇게 지나가고 만다.

그녀를 위해서는 아니다. 미워하는, 서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내게 이득이 되는 일이 없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환자이니, 안부 하나 없이 그저 정보만 묻는 연락은 삼가해달라고

새언니는 아마 꽤나 당황했을테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내 마음을 표현해서 내는 다시 심연에서 올라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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