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삶은 예상과는 아주 다르게 흘러갔다
사람들은 말한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고도 행복한 삶이라고.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일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받으며 살았다. 오래 사귄 연인과 달콤쌉쌀하게 만나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웃고 떠드는 시간을 좋아했다. 일 년에 한 번 여름휴가 때마다 훌쩍 떠나는 해외여행은 일 년을 버티는 힘이었다. 내 삶은 언제나 평탄했고, 나는 지극히 평범한 평균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산 41년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보통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지독하게 어려운 일인지 비로소 알게 됐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45세 여성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주변을 잠시 돌아보면 보인다. 친구들은 20대 또는 늦어도 30대 중반에는 모두 결혼했다. 아이 하나, 아이 둘, 때론 아이 셋을 키운다. 남편 혼자 벌어서는 생활이 어렵다며 아직 대부분은 일한다. 직장인으로, 엄마로, 아내로 치열한 삶을 산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다고 말하지만, 가족들과 복작복작 사는 그들의 삶이 가끔 부럽기도 하다. 비혼이 대세라고 하지만 가까운 사이 중,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물론 친구의 범위를 지인으로 넓히면 혼자만의 삶을 만끽하며 사는 싱글녀들도 넘쳐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남편과 지지고 볶으며, 아이들과 실랑이하며, 때론 버겁지만, 종종 웃을 수 있는 삶이 문득 생각나는 평범함이다.
평범하게 사는 친구들의 삶과 단 하나의 공통점도 찾을 수 없는 삶. 그게 내 삶이다.
41세 4월 만우절에 맞이한 첫 번째 암 진단, 41세 6월에 추가로 발견된 두 번째 암 진단, 41세 9월에 17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제 발로 나와 4년째 백수로 사는 나, 45세 6월에 나를 심연으로 가라앉혀버린 두 번째 암의 재발 소식. 그리고 지금 45세 8월을 살아내고 있는 나. 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똑같다.
헐….
많은 사람에게 나의 지난 4년은 지지리도 복도 없네! 쯧쯧쯧. 하고 보이는 모양이다. 확신하건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반응도 비슷했을 테다. 재밌게도 헐 이후의 반응도 대체로 비슷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아니
아무도 암 환자라는 것을 상상도 못 하게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어요?”
밀려오는 질병의 쓰나미에 몸도 마음도 지쳤다. 또렷히 기억나는, 숨 막히도록 차디찬 수술방의 공기, 매일 마주해야 하는, 온 몸을 뒤덮은 수술자국들.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니 내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몸서리치게 외로운 고독의 순간들이 나를 에워쌌다. 재발이나 전이가 되면 어떡하지? 죽음을 아주 가깝게 느끼며 매일 불안감과 싸웠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을 살아냈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그럼에도 삶은 이어진다. 불행에 짓눌려 다시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 암의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받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죽어도 후회가 없니?
아니, 아직은 억울해서 절대 죽을 수 없어.'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 태어났으니 그저 살고 있던 인생을 이대로 멈출 순 없었다. 나만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면서 비로소 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힘들지 않은 인생은 없다. 누구든 매일 ’나만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사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이 글을 그럼에도 잘 살아내고 있는 내 지난 4년의 기록이다. 이 기록이 오늘 하루도 지쳤을 누군가에게 조용히, 아주 작게라도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