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암진단은 처음이지

선택은 없었다, 견디는 것만이 내 몫이었다

by naniverse

“혹시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어요?

미안해서 어떡하지? 아직 미혼인데 말이야....

자궁 뿐만 아니라 난소도 다 절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


그날은 만우절이었다.

아무리 심각해봐야 상피내암(0기)이겠지 하는 기대로 방문한 병원에서 나는 자궁경부암1기 진단을 받게 됐다. 차갑고 냉정하기만 한 의사를 만날 것이라는 예상했다. 하지만 처음 만난 나의 교수님은 미안함을 가득담은 표정으로 내게 내가 꼭 살려줄께요라고 말했다.

도대체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살려줘? 그정도로 심각한거야? 정신이 혼미해지던 그 순간의 기억.


“2년마다 한 번씩 검사했잖아! 이게 무슨일이야?”
어떻게 미리 발견하지 못했냐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러게나 말이야. 하고 나의 잘못을 애써 감췄다. 회사는 2년마다 한 번씩 꽤나 근사한 검진센터들에서 건강을 확인할 기회를 줬다. 사실 검진 때마다 생리가 겹쳐 자궁경부암 검사를 못한지 4년이었다. 생리가 끝나면 재검을 하자던 병원의 권유에도 의사 앞에 다리를 쩍 하고 벌려 해야 하는 검사가 영 못마땅해 이번 한 번은 넘어가지 했던 내 잘못이었다.


암치료의 모든 과정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암을 그렇게 만만하게 봤니? 하며 비웃기라도 하듯


0기겠지 했던 암은 1기를 지나 최종 3기c가 되었다. 자궁경부암 절제하면 될 줄 알았던 수술은 여성 관련 모든 장기들을 절제하고나서야 다섯시간만에 끝이 났다.

엄마 무통 좀 눌러줘하고 수시로 말했다. 엄마는 분명 눌렀다는데 쉽사리 가시지 않는 통증에 난 교수님께 말했다.

"교수님, 아무래도 우리 엄마가 아닌 것 같아요. 무통을 안눌러줘요 엉엉 “

퇴원 후 회복은 더뎠다. 퇴원하자마자 장이 꼬여 응급실을 다녀왔다. 침대에서 스스로 일어서지도 못한 나는 엉엉 울며 말했다.

“제가 자궁경부암 개복수술한지 일주일밖에 안되서 혼자 못일어나요 엉엉”


퇴원 후 3주까지 매일 들었던 생각은 ‘과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수술로만 끝나겠지 했던 치료는 수술과정에서 림프전이가 발견 되면서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추가됐다. 봐줄만하겠지 생각했던 수술흉터는 다신 쳐다보고 싶지 않을 만큼 끔직하고 컸다. 엄마에게만큼은 숨기고 싶던 항암치료는 8kg이 빠지면서 당연히 들키고 말았다. 항암은 모래알을 씹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해 줬다. 손만 뻗으면 닿을 바나나 하나를 집으러 갈 기운이 없어 종일 굶는 날도 있었다. 설사와 변기가 동시에 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아직도 알 수 없었던 방사선 치료. 총 다섯번의 항암과 25번의 방사선치료를 마쳤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이제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마져도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고야 말았다.


처음 겪어보는 암 치료의 과정은 모든 것이 새로웠고 서툴렀다.

나에겐 어떤 선택도 주어지지 않았다. 매 순간, 암이 정해준 코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저 견디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가지였다. 그리고 나는 믿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수술도, 항암도, 방사선도 다 견뎠으니 이제는 끝이라고.가벼운 마음으로 외래에 가서 교수님께 물었다.

“교수님, 지난 번에 림프전이 때문에 PET-CT 한 번 찍어보자 하신거요. 별 것 없는거죠? 결과에 대해 아직 못들은 것 같아서요. “

차트를 다시 한 번 살펴보던 교수님의 얼굴을 점차 굳었다.

“아..어떡하지? 유방외과 진료를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판독 결과가 유방암일 가능성이 80% 이상이라고 나와있네.....이게 무슨 일이야”


끝은 또다른 시작이었다.

지난 세 달동안 모든 걸 견뎌낸 바로 그 몸에서, 나는 또 다른 암을 마주하게 됐다. 하나도 아닌 두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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