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벅찬데 둘이라니

나는 왜 가족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을까

by naniverse

두번째 암 수술날, 아침 6시 28분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회진정보

***님 5분 후 신**교수님의 회진이 진행됩니다. 병실에 따라 방문 시간은 다를 수 있습니다.


수술 전 회진을 위해 병실에서 기다리라는 안내 문자를 받고 대기하고 있던 순간,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 이런 문자가 방금 왔는데 잘못 온거야? ? “

오빠가 내게 확인을 요청한 문자는 내가 방금 받은 바로 그 톡!

“엥?? 아침부터 무슨소리야?? 나 당연히 집인데? 뭐가 오류가 났나? 저런 문자가 왜 갔을까 모르겠네”

아무렇지 않은 듯 오빠와의 통화를 마무리 하고 급하게 간호사실로 뛰어가서 외쳤다.


“선생님, 제가 가족들에게 비밀로 하고 수술하러 온 거라 어떠한 안내도 가족에게 나가면 안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오늘 보호자로 되어 있는 오빠에게 연락이 갔어요! 지금 당장 이것 좀 안가게 해주세요! 급해요! 가족들이 알면 절대 안되는데요!!! “


유방암 진단을 받고 가장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수술도 아니고 추가치료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두번째 암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첫번째 암 치료과정에서 무엇보다 내 마음을 힘들게 했던 것은 치료 과정의 고통보다, 가족에게 괜찮은 나의 모습의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엄마는 고작 3개월이었던 나의 첫번째 암 치료과정 중 나보다 더 눈에 띄게 말라 갔다.

내 앞에서 절대 울지 않겠다는 엄마였지만, 엄마의 얼굴과 몸짓은 언제나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차있었다. 그런 엄마의 얼굴을 매일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엄마를 슬프지않게 하기 위해 난 아픔조차 숨기려 했고,괜찮은 척 더 밝게 웃어야 했다. 오빠는 매일매일 나의 컨디션과 치료경과를 체크했다. 매일 전화가 오고, 문자가 왔다. 어쩌다 가끔 연락하던 적당한 거리의 남매였던 그와 나 사이는 지나치게 가까워져 버렸다.


모두에게 처음이었다.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에 나 자신조차도 아직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의 멘탈은 아직 안정화 되지 않은 상태였고, 나의 가족들 또한 어찌할바를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우린 알지 못했다.


암환자에게 쏟아지는 지나친 관심은 암환자를 종종 지치게 한다.

그 관심에 지친 암환자들은 자신을 일반인 혹은 정상인처럼 대해달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지인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것이 암환자다. 지나치게 독립적이라는 평가를 종종 받곤 하는 내게, 모든 가족의 시선이 나의 건강, 치료에 몰리는 것은 감사함보다는 불편함을 야기시켰다.


첫 암 치료를 끝내고 겨우 열흘이 지난 어느 아침이었다.

이제 치료가 다 끝났다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고 가족들이 모여 함께 웃은지 고작 열흘이 지나 있었다. 이제 겨우 활짝 웃는 엄마에게 난 두번째 암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내 팽개치고 휴가를 써가며 내 병원길에 여러번 동행했언 오빠였다. 그가 이제 자신의 가족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그 때, 새로운 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내 곁에는 오래만난 연인이 있었다. 그가 곁에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에게는 나의 두번째 암에 대해 죽을때까지 알리지 않기로 결심하고야 말았다.


유방암은 2번의 수술, 19번의 방사선치료로 마무리됐다.

0기라고 했던 암은 한 쪽에서 미세침윤이 발견되면서 결국 난 유방암 1기 암환자가 됐다. 수술한 환자의 고작 10%의 환자가 재수술을 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교수님은 말했지만, 역시나 난 그 10%의 환자가 되었다. 언제나 그랬든 모든 것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수술이 생각보다 아프지 않은 것도 예상과 다른점이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매일 가슴과 배 모두가 흉터로 뒤덮힌 내 모습을 보는 것은 수술의 아픔보다 더 오랫동안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007작전을 하는 것처럼 두번째 암투병을 가족 모두에게 숨겼다. 성공이었다.


첫번째 수술을 하고 퇴원을 했다.

10일쯤 지나 배액관을 빼고나서 수술한 티가 나지 않게 되자마자 드디어 엄마를 보러갈 수 있었다. 그리웠던 엄마 얼굴을 보고 엄마 밥을 먹었다. 그리고 난 다시 혼자 두번째 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연인이 곁에 있었지만, 엄마가 내 곁에 없었다. 엄마가 곁에 없다는 것은 더이상 괜찮은 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져야하는 상황이 었지만, 엄마가 그리워 밤새 눈물이 쏟아질만큼 서러운 일이기도 했다.


엄마의 아주 가까운 친구가 유방암에 걸리셨다고 했다. 엄마는 종종 친구가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지, 그에 반해 우리 딸은 건강해서 참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목구멍 가까운 곳까지 엄마 나도 또 아팠어. 엄마가 필요했었어 하고 하고 싶은 말이 차올랐다. 하지만 이내 꿀꺽 삼키고야 만다. 오롯이 혼자 견디기로 한 것이 잘 한 선택이라고 또 한번 나를 토닥인다.


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

밝힐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평생을 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가족에게 알리지 않기로 한 나의 이 결정이 과연 옳은 결정인지,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다.


성공적으로 마친 007작전을 나는 지금 다시 시작했다.

재발진단과 4번째 수술. 절대 들키지 말고 잘 끝내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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