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 is so terrible as a secret. Carl Jung
“비밀을 간직하는 일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대부분의 싸움은 겉으로 드러난 이유로 시작되지 않는다. 설거지, 낡은 신발, 말 한마디.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그런 사소한 말과 행동 뒤에는 언제나 오래된 서운함이 숨어 있다. 싸움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했던 가을 어느 날이었다. 거의 열흘쯤 되는 긴 추석 연휴 끝자락에 우리는 청주에 있는 청남대로 나들이를 떠날 참이었다. 가벼운 산책 후 맛있는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들러 인사를 하고 꽃을 갈아놓고 오기로 했다.
엄마는 오늘도 닳고 닳아 그만 좀 버리라고 했던 미끄러운 신발에 발을 구겨 넣고 있는 아빠를 보며 말했다.
“당신 그 신발 미끄러운데 그거 말고 다른 것 신지? ”
아빠는 움직임을 잠시 멈췄다. 묘하게 바뀐 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잠시 마주친 아빠의 눈이 날카롭게 변하고 있는 것을 나는 봐버렸고, 엄마는 보지 못했다. 아빠는 신발장을 열어 베이지색 트레킹화를 꺼내 들었다. 불편해서 잘 신지 않는다고 했던 그 신발을 말하는 것이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엄마가 말했다.
“아니, 그거 말고, 지난번에 딸이 사준 거 검은색 있잖아요. 그거 신지? ”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엄마를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에이, 시팔.”
아빠가 내뱉은 나지막한 한마디에 오늘도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은 끝이 났다.
엄마는 요새 아빠와 사이가 좋다고 말했었다. 아빠가 별것도 아닌 일로 욱하기 전까지 가정의 평화는 오래도록 유지되곤 했다. 아빠가 화를 낼 때가 됐는데 이상하게 화를 안 내서 너무 평화로워 불안하다며 엄마는 환하게 웃었다. 아빠가 화를 내는 일은 늘 사소했고, 엄마는 늘 억울해하며 울었다. 이미 너무 익숙해진 그림이 그려져 나도 웃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비가 부슬부슬 오니 딸이 새로 사준 미끄럽지 않은 신발로 갈아 신으면 어떻겠냐는 엄마의 애정 섞인 제안일 뿐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아빠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묻는 내게 아빠는 그동안 엄마에게 쌓인 것이 많다고 했다. 엄마는 항상 아빠가 무엇을 하든 아빠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며, 엄마가 원하는 대로 바꾸라는 명령을 한다고 했다. 신발을 갈아신고, 옷을 바꿔 입으라고 한다는 등의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나에게는 엄마의 애정이 가득 담긴 잔소리로 느껴졌지만, 아빠에겐 본인의 의사결정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빠는 또 무시당했다는 모멸감에 지금 당장이라도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억울한 엄마는 오늘도 울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평화는 고작 낡은 신발 하나에 한순간 와장창 깨져버렸다.
고작 새 신발로 바꿔 신으라는 것이, 뭐 그리 모욕적인 일이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50년 가까이 서로 맞추며 살았으면서, 언제나 다툼은 별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되었고, 크게 번져나갔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가운데 두고 서로의 모멸감과 억울함에 대해 한참을 다퉜다. 길어지는 부부싸움은 왜 하필 매번 내가 집에 와 있는 날에만 벌어지는 것인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제발 그만 좀 해. 인생이 얼마나 짧은데 이런 것으로 싸우는 거야? 엄마, 아빠가 먼저 죽을지 내가 먼저 죽을지 아무도 몰라. 인생은 그렇게 짧다고. 그러니까 별것 아닌 일로 그만 좀 싸우고 사이좋게 지낼 수 없는 거야? ”
그날 나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하고 말았다. 나는 이 말이 특히 엄마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리라는 것을 당연히 알면서도 기어이 내뱉어 버렸다.
‘엄마, 아빠보다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
하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내 마음을 쏟아내 외로운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진짜 이야기는 꺼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다.
‘엄마, 아빠, 그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난 두 달 전에 엄마, 아빠 모르게 4번째 암 수술을 마쳤어. 혼자 수술받았고, 혼자 회복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내 온몸은 수술 자국이 한가득해. 양쪽 가슴에도 배에도 말이야. 내가 왜 아무 말 안 했는지 알아?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해서 귀해서 말 못 했어. 이 하루를 엄마, 아빠랑 웃으면서 지내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엄마, 아빠한테 아무 말도 못 하고 혼자 견뎌내고 있어. 그깟 신발 좀 바꿔 신은 것이 뭐 그리 대수라고 엄마, 아빠는 죽기 살기로 싸우는 거야? 제발 이런 사소한 일로 싸우고 서로 미워하지 말고 그냥 서로 다독이며 사랑하면 살면, 안돼?’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감추려다 보니 눈물은 더 뚝뚝 흘렀다. 그만 좀 싸우고 사이좋게 지내라며 애원하는 내게 엄마와 아빠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더 이상 내 앞에서 싸우지 않겠다며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또 하고 말았다. 아빠는 서재에서, 엄마는 주방에서, 나는 거실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가 진정되길 기다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다녀왔다. 추석을 지내고 남은 나물들에 엄마가 만든 빨간 고추장을 비벼 점심도 먹었다. 매운 고추장 때문인지 목구멍으로 삼켜버린 비밀 때문인지 어쩐지 속이 아리도록 쓰렸다.
서먹서먹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부지런히 짐을 챙겨 나 이만 갈게, 하며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집에서 나왔다. 엄마는 얇은 원피스 한 장을 걸쳐 덜덜 떨고 있으면서도 기어이 주차장까지 나를 따라 내려왔다. 내 손을 잡고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다신 네 앞에서 아빠랑 이렇게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싸우지 않을게. 그러니까 엄마한테 그런 무서운 얘기 다신 하지 마. 어떻게 엄마한테 네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고 얘기를 해. 엄만 네가 아팠던 것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찢어져. 엄마가 아빠랑 진짜 사이좋게 지낼게. 그러니까 다신 그런 얘기하지 마. 제발 그러지 마.”
가늘게 들썩이던 엄마의 어깨는 엄마의 눈물을 삼키느라 점점 크게 움직였다. 온몸으로 울고 있는 엄마를 가슴 깊이 안았다. 미안하다고, 다신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엄마를 더 꽉 안았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어쩌지 못하는 엄마의 몸은 더 크게 요동쳤고, 나 또한 그랬다. 엄마를 꽉 안은 채 생각했다.
‘엄마, 생각보다 죽음이 더 가까이 내게 와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엄마와 아빠가 더 이상 서로를 미워하지 않게 될까? 엄마 아빠가 알고 있는 것처럼 내가 고작 자궁경부암 환자가 아니라 유방암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엄마는 혹시 견딜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해지는 내 마음의 소리가 귓가에 들려 엄마를 안고 나도 한참을 울었다. 당장이라도 끄집어내고 싶은 나의 모든 이야기를 목구멍 깊은 곳으로 꾹꾹 누르며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시는 그런 얘기는 하지 않겠다며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을 또 한 번 삼키고 엄마를 다독였다.
아프고 나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내일도 당연하게 만날 것으로 생각하는 하루가 어쩌면 내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소한 오늘 하루가 나를 사랑하고 내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기만 하는데도 짧은 시간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화를 내며 살고 싶지도 않다. 화를 낼 일이 나만 피해서 가줄 리 없으니, 매일 내 마음을 다스리는 노력을 할 뿐이다.
사람들은 죽음이 언젠가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아주 먼 이야기처럼 여기며 산다. 나 역시 그랬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에게 서운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우리는 너무 쉽게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고작 마흔하나에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그 깨달음을 가져온 나의 비밀은 가끔 이렇게 입 밖으로 나오고 싶어 내 마음을 간질댄다. 비밀을 간직하는 일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다는 칼융의 말처럼 나는 오늘도 죽을힘을 다하여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삼키고 또 삼켰다. 오늘도 엄마, 아빠에게 말하지 않은 채,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