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진 뒤에

by naniverse

어느새 벚꽃이 지고 없었다. 수술받으러 병원에 왔을 땐 벚꽃이 만개했었는데, 결과를 들으러 가니 꽃은 없고 잎들만 초록하게 무성해져 있었다. 수술 결과를 들으러 가는 길이 마냥 안심됐던 것은 아니다. 1기면 보통 방사선이나 항암 안 한다고 하던데, 교수님은 수술 전부터 추가 치료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이미 내게 해버렸다.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이런 것이다.

‘1기지만 추가 치료를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과하더라도 치료를 해봅시다.’

인생은 늘 그렇듯이 예상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암이 이미 림프까지 전이돼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래도 여전히 1기지요? 하고 묻는 내게 교수님은 3기 C에요, 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3기 암 환자는 말기 암 환자랑 뭐가 다르지, 하는 생각에 머리를 스쳤다. 수술로 모든 치료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추가됐다.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잔뜩 굳어버린 내게 교수님은 놀리듯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머리카락은 안 빠지는 항암이에요. 그게 어디야.”

머리카락이 안 빠지는 항암도 있다니. 병원에서 들은 얘기 중 가장 반가운 이야기였고 나도 따라 웃었다.

머리카락이 안 빠지는 항암이라니, 어쩌면 엄마에게 항암 사실을 숨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여성 관련 장기는 절제했다는 것은, 엄마에게 들키고 말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나의 암이 아주 초기에 발견했다고 알고 있었다. 자궁경부암 1기라고 굳게 믿고 있던 엄마에게 굳이 항암치료를 받는다, 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알게 되면 내 집에서 지내지 못하고 또다시 본가에 가서 지내야 하는 것도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수술로 모든 치료가 끝났다고 거짓말하기에는 25번의 방사선 치료를 위해 매일 병원에 가야 했다. 잘 회복하고 있다고, 방사선 치료는 10분 동안 누워 있다가 오는 것이라 정말 별것 아니라고 발 연기를 했다. 하지만 끝까지 항암에 대해 엄마를 속이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 같다.

“딸 왜 이렇게 아무것도 못 먹어?”

“왜? 열심히 먹고 있는데.”

“아닌데, 밥도 반찬도 아무것도 안 줄어들잖아. 항암치료를 하는 사람들이 못 먹는다고 하던데. 방사선 치료도 그 정도로 힘들어? 방사선 치료는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다던데 도대체 왜 그래?”

드라마에서나 보던 구토를 하는 등의 부작용은 다행히 없었다. 하지만 항암은 ‘모래알을 씹는 기분’이 어떤 건지 처음 알게 해줬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썼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진수성찬이 한 시간이 지나도록 조금도 비워지지 않으면서 항암치료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추가 치료를 하며 본가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삼시세끼 밥을 챙겨주는 엄마가 없으니 어쩐지 서러운 것도 같았다. 어느 날은 손만 뻗으면 닿는 바나나 하나를 집을 기운이 없어 종일 굶었다. 설사와 변비가 동시에 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아직도 알 수 없는 방사선 치료도 마쳤다. 고작 다섯 번의 항암이었지만, 온몸의 근육통에 시달리며 한숨도 자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3월에 시작한 치료는 다섯 번의 항암과 스물다섯 번의 방사선 치료를 마치며 6월 중순이 되어서야 드디어 끝이 났다.


치료를 다 마치고 나니 여러 가지가 달라져 있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어 돌던 집 앞 호수 한 바퀴는 스무 번을 넘게 쉬며 걸어도 끝에 다다르지 못하게 됐다. 매일 밤 다섯 번도 넘게 일어나 화장실에 가야 했다. 그나마 잠이라도 들면 다행이었다. 지독한 불면증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기분 좋은 단 한 가지는 늘 염원했던 다이어트가 저절로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항암으로 먹지 못해 8킬로그램이 빠지면서 아무런 노력 없이 가장 날씬했던 이십 대 때의 몸무게가 되었다.


처음 겪어보는 암 치료의 과정은 모든 것이 새로웠고 서툴렀다. 나에겐 어떤 선택도 주어지지 않았다. 매 순간, 암이 정해준 코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저 견디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였다.

정기검진은 3개월에 한 번씩 하자고 했다. 앞으로 2년 동안은 3개월에 한 번씩, 별문제가 없으면 4개월, 6개월로 기간을 늘려주신다는 이야기에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났다는 마음에 기뻤다. 그리고 나는 믿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수술도, 항암도, 방사선도 다 견뎠으니, 이제는 끝이라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교수님께 진작 물어야 했는데 잊고 있던 질문이 생각났다.

“교수님, 지난번에 림프 전이 때문에 PET-CT 한 번 찍어보자 하신 거요. 별일 없는 거죠? 결과에 대해 아직 못 들은 것 같아서요. ”

“오 그래. 우리 PET-CT 찍었었지. 뭐 별거가 있겠어요? 그래도 한번 보자.”

차트를 다시 들여다보는 교수님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지며 짙은 당황이 스쳤다.

“아니, 이게 뭐지… 어떡하지? 유방외과 진료를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판독 결과가 유방암일 가능성이 80% 이상이라고 나와 있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암 생존자 중 두 번째 다른 암을 겪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어찌나 운이 나쁜지 나는 불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버렸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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