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야, 눈 좀 떠봐, 엄마 여기 있어.”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울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쩐지 엄마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마취에서 깨어나며 조금씩 정신이 차려졌다. 분명 아직 마취가 다 풀리지 않았을 텐데, 온몸을 관통하는 이 생경한 통증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엄마,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아. 왜 이렇게 아파? 너무 아파.”
아프다는 말 말고는 어떤 말로 아픈 것을 설명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런 게 ‘죽을 만큼 아프다’라는 말의 뜻인가 싶었다.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았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개복수술을 했는데 수술한 복부 쪽보다 허리가 더 아픈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 허리가 너무 아파, 진짜 끊어질 것 같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한결 나을 것 같았지만, 배에는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한가득 얹어져 있었다.
“선생님 뭐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마취가 다 풀린 것도 아닐 텐데 이렇게 아파하는데 어떡해요. 뭐라도 해주세요.”
엄마는 고통에 한마디도 못 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내 손을 꼭 잡고 수술 경과를 보러 온 전공의에게 애원했다.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무통 주사가 자동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참기 어려우면 수동으로 누르면 된다고 했다. 무통 주사 좀 눌러달라는 내 말에 엄마는 분명 눌렀다고 했지만, 통증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교수님께 말했다.
“교수님, 아무래도 우리 엄마가 아닌 것 같아요. 무통을 눌렀다는데 통증이 하나도 안 사라져요.”
교수님은 친엄마가 아닌 것 같네요? 하고 말했다. 나를 웃기려 작정한 모양이었다. 무통 주사 그거 한 번 누르면 15분 후에나 다시 눌려요. 계속 눌러봐야 약이 안 나오니 아픈 게 정상이에요, 하는 교수님의 대답이 어쩐지 야속했다.
“교수님, 너무 아픈데요. 다른 사람들은 안 아프대요?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요? ”
수술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3시간이면 끝날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회복실로 옮겨졌다. 엄마는 3시간 후에 건강히 만나자고 했던 딸이 다섯 시간이 넘도록 수술방에서 나오지 않아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수술실로 들어간 사람들이 다 회복실로 옮겨질 때까지도 회복실에 내 이름이 뜨지 않았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라 엄마는 혼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앉지도 못한 채 서성이며 그 긴 시간을 나를 기다렸다. 나중에 아빠에게 들은 얘기지만, 약속의 세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고 했다.
“나니 아빠, 나니가 안 나와. 분명 수술은 세 시간이면 끝난다고 했는데, 세 시간이 지나고 네 시간이 지나도 애가 안 나와. 무슨 일 생긴 거면 어떡해.”
조금만 지나면 나올 거니 걱정하지 말라는 아빠의 위로에도 엄마는 괜찮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울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분명 많이 울었을 것이다.
“아니, 환자분 어제 수술하지 않으셨어요? 벌써 걷고 계신 거예요?”
수술한 지 이틀 만에 침대 밖으로 나왔다. 배액관과 소변줄 그리고 온갖 주사병을 주렁주렁 달고 병실 밖 복도를 거북이 마냥 느린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 하나 떼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걸었다. 벌써 병실 밖으로 나와 버린 나를 보며 담당 간호사가 놀래 물었다.
“교수님은 운동을 많이 해야 집에 빨리 갈 수 있다고 하셔서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제 수술하고 다음 날 걷는 환자 처음 봐서요.”
하루라도 더 빨리 걸어 괜찮은 척을 하면, 슬픈 눈으로 나를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는 엄마가 안심할 것 같았다.
개복수술을 마치고 6일 만에 퇴원 허가가 떨어졌다. 혼자서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대학병원에서는 급성기 환자를 위해 병실을 비워줘야 한다고 했다.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환자가 퇴원해야 다른 환자가 수술할 수 있다니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 건지. 오빠는 휴가를 내고 나를 데리러 왔다. 우리가 이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나? 싶기도 했지만, 내 동생은 내가 지킨다는 오빠가 고맙기도 했다. 방지턱을 하나 넘은 때마다 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오빠를 보며 그래도 오빠가 있으니 좋구먼, 하고 말해줬다.
퇴원 후 회복은 더뎠다. 엄마를 부르지 않고 혼자 일어나려 애쓰는 과정에서 팔뚝은 다 까졌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장기들은 제자리를 찾기 위해 몸 안에서 방황하며 내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줬다. 퇴원 다음 날 저녁에는 엄마가 정성껏 끓여준 전복죽을 먹고 장이 꼬여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됐는데 나는 이때 생각했다.
‘과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