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목표는 유독 글을 많이 쓰는 해가 되자, 였는데 목표로 정했기 때문일까. 유독 글을 쓰지 않고 지나온 날들이 많았다. 거창한 글을 써서 등단을 해보자, 출간이라도 해보자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가장 구구한 방식으로 잡아보자, 라는 작은 포부가 있었는데 이또한 기합을 넣은 것이었을까, 몸에 힘이 들어가 하지 못했다.
계획한 일을 지키지 못해 스스로가 미워질 때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발견한 어느 귀중한 장면을 생각한다. 누군가가 미울 때는 극 속 등장인물처럼 여겨보라는 것. 그러면 더 이상 그가 밉지 않고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나의 행동에 대해 독립영화 시놉시스처럼 서술하는 버릇이 생겼다.
가족과 떨어져지내는 난*.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왔지만 어색한 기분에 방 안에서 꼼짝도 않는다. 그러던찰나,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고 난*는 방문을 나선다. 그곳에서 예기치 못한 특별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주말에 집에 누워있다가 친구가 불러서 술 먹으러 나갔다는 영양가 없는 일상이지만, 어느 극 속 인물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용서가 되는 것이다. (물론 티켓 값 15,000원을 주고 보러 갈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슷한 이야기로 최근 들은 강연에서는 누군가로 부터 무례를 겪었다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라고 말했다. 누군가 어깨를 치고 사과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면 코인으로 돈을 많이 잃었나 보다 혹은 가족과 싸웠나 보다 혹은 부모님이 쓰러지셨나 보다 같은 상상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화내지 않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시간에 떠밀려 10월, 11월까지 왔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거니, 무언가 변수가 있었겠거니 하고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쩌면 웬만한 이야기들은 시작은 변명에서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타인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주려다 시작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