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엄마
난*예요. 엄마가 써준 편지에 이제야 답장을 하네요.
고등학교 3학년 때쯤에 엄마한테 편지를 쓴 일이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마음이 괴로워 털어놓고 싶은 말이 많았나 봅니다. 그 마음이 전해진 건지 그 편지는 아직도 엄마 지갑 안에 있더라고요. 하필 그 무거운 편지가 아직도 그 안에 있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네요. 그 편지를 보며 엄마가 미안하다고 했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나요.
왜 저는 항상 엄마를 반성하게 할까요. 우리 모두 반성할 필요가 없는데, 잘못한 일이 아닌데 자꾸 엄마만 반성하게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어요. 이 글도 엄마가 그런 마음이 들게 할까 걱정스러워 미리 밝혀두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반성할 필요가 없음을.
더욱이, 저도 더 이상 반성하고 싶지 않아요. 지난겨울부터 초여름 지금까지, 실직 후 저는 무엇을 반성하는지도 모르고, 반성하는 것만이 제 일인 것처럼 스스로를 자책해왔어요. 하지만 반성의 대상이 뭔 줄도 몰랐고, 반성에는 이유도 목적도 없었기에 그저 제 마음을 갉아먹기만 할 뿐이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과거로 돌아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도 없어서 끝없이 고여있기만 했어요. 올해는 오래도록 참 추웠습니다.
누구는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라고, 별일이 아니라고 했고 누구나 다 겪는, 겪고 있는 일이라고 뭐든 해보라고 했지만, 그 말이 맞다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몸은 계속 나태했어요. 결국 나태라는 잘못이 하나 더 늘어 스스로를 비난할 근거를 하나 더 만들어주는 일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왜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포기가, 좌절이 익숙한 사람이 되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일이 마냥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려고요. 오히려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조금 더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오래지 않을 생의 일부를 낭비했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 스스로를 기다려줘야 한다는 법도 배웠고. 좌절에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님을 느끼기도 했고. 당연한 이야기들 같지만 이 당연함을 겪기 전까지는 공감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엄마는 공감할 수 있었나 봅니다. 이 시간들을 지나왔기 때문에 제 슬픔에 공감할 수 있었나 봐요. 엄마는 어린 맘을 모르고 다 큰 어른 대하듯 대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저는 엄마가 어리고 여린 마음을 알아줘서가 아니라, 다 큰 나의 외로운 마음에 공감해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마음이란 미성숙해서 복잡한 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아니 어른이 되고도 줄곧 외롭고 복잡한 것이니까요. 어릴 때든, 어른이 되어서든 외롭고 복잡한 마음에 진심으로 다가와주고 공감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 공감을 생각하면 정말 큰 힘이 된답니다.
지금 그 마음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요즘은 기분이 좋은 날이 꽤 늘었어요. 밤식빵에 박힌 밤알 갱이처럼 좋은 날들이 박혀있습니다. 시원한 곳에서 커피도 마시고 읽고 싶은 책도 읽고 해야 할 공부도 가볍게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때로는 동네 친구들을 만나 같은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처지에 분노하고 스스로를 연민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답니다. 그렇게 실하든 실하지 않든, 이런 날들이 모여 다음날에 남은 기운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지친 날에 그 기억을 끌어와 동력 삼아 지내기도 합니다.
이 짧지 않은 편지가 엄마에게 어떻게 읽힐지 예상이 되지 않아 염려스럽습니다. 더운 날씨에 기운을 더 앗아가는 건 아닐지, 걱정을 불어나게 하는 건 아닐지, 다시 한번 반성하게 하는 건 아닐지. 어느 쪽으로도 이어지지 않길 바라며 그저 지금은 괜찮구나 생각해주면 고마울 것 같아요. 지독한 봄이 지나가고 더 지독한 여름이 왔네요. 이 지독한 시절에 수박 한 통을 사서 부지런히 나눠 먹을 수 있는 가족 곁에 있어 저는 이따금씩 행복하고 안심하고 편안합니다. 올해 여름은 엄마가 잠을 설치지 않고 아침까지 편히 잠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항상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2020년 여름의 초입에서 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