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여 헤매고 길을 잃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가?
미디어영상학과를 복수 전공으로 선택한 것을 지인과 동호회 사람들에게 알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의 조언이 다큐멘터리 영상 관련 과목을 바로 듣지 말고, 가능하다면 학과 커리큘럼에 맞춰서 1학년 전공과목부터 차근차근하게 들으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바로 당장 어떤 영상 결과물을 내놓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1학년 전공과목부터 수강을 시작했다.
‘영상제작입문’이라는 과목을 수강할 때의 일이다. 출석 과제물로 ‘영상 제작 기획서’와 ‘촬영 신(숏) 리스트’를 작성하는 과제가 나왔다. 영상물의 장르와 길이는 자유이지만, 기획서라는 문서의 필수 요소와 최소 분량 요건이 제시되었다. 여기서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미디어영상학과를 복수전공한 이유는 ‘둔촌주공아파트’관련 기록물들에 자극을 받아, 나도 우리 아파트에 대한 영상기록물을 만들고 싶지만, 영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뭘 해야 하는지를 배우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이번 학과 과제물로 이러한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주제로 영상 제작 기획서를 작성하고자 했다. 그런데, 써지지가 않는다. 기획서가 써지지 않으면, 당연히 촬영 신리스트도 쓸 수 없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스스로가 정말 하고자 하는 것을 구체화해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되나? 다른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의 문서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낙서수준에서라도 무언가가 나와야 정상인 거다. 글씨로 치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악필이라도 글씨는 쓰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학과 과제물이라는 것은 기한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종류의 것이다.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점수가 영점이 되는 강력한 페널티가 있는… 그래서, 일단은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브이로그 영상에 대해서 기획서를 작성하고 촬영 신리스트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점수는 30점 만점에 29점을 받았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성적이 좋게 나왔다. 땜빵으로 선택해 급히 작성한 것이 이런 점수가 나온다고?
그리고,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는 정말 우리 아파트에 대한 영상기록물을 남기 싶어 하는 걸까?
나는 정말 무엇을 찍고 싶은 걸까?
나는 정말 무엇인가 찍고 싶은 것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