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있었던, 앞으로 있을 '나 혼자 뿔 받아 급발진'의 핑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입학한 대학시절 내가 가입한 동아리 중 한 곳은 기록과 회의가 일상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회의 때면, 소위 싹수(?) 있는, 동아리 생활에 몰두하는 1학년 서너 명은 회의 중의 모든 발언을 순서대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토씨 하나까지 받아 적는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모여서 서로의 기록물을 확인하며 빠지거나 틀린 부분을 수정하여 통합본을 만들어서 동아리 운영진인 2학년에게 넘긴다. 이 기록을 넘겨받은 동아리 운영진들은 회의 시간에 본인들이 기록한 메모와 같이 참조해가며, 주요 발언 및 결정사항, 다음 회의 때까지 처리해야 일들을 발췌 정리한 문서를 만든다. 이 요약본과 통합본을 동아리 회장(보통은 제대한 복학생 선배)이 최종 확인하면, 요약본은 지도 교수와 동아리 전체 회원에게 배포하고, 통합본은 동아리방에 비치해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공개한다. 이러다 보니, 녹취를 위한 노트와 필기도구, 메모용 수첩을 들고 다니는 것은 일상이 되고, 요즘 말하는 문구덕후처럼, 다이어리와 만년필에 집착하게 된 계기가 된다.
나의 원래 대학 전공은 산업공학이다. 그러다 보니, 역시 기록과 측정을 중시한다. 요즘 커리큘럼은 잘 모르지만, 당시에는 가장 배우기도 쉽고 가르치기도 쉬운 것이 일(work)과 작업시간(time)을 기록하고, 표준모델을 정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파생되어서 나오는 것이, 원조는 사실 미국이지만, 일본식 표현인 공수(工数) 관리이고, 내 직장 생활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 복무 시절 내가 소속한 부대는 미군이 관리하는 벙커에서 미군과 공동 수행을 하였고, 업무 중 사용하는 장비나 근무 일지 작성, 인수인계 등도 미군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근무는 미군과 같이 Day - Swing - Mid 3교대로 이루어졌고, 그날의 근무 일지는 발생 시간과 이벤트를 중심으로 작성하고, 인수인계는 반드시 이 작성된 근무 일지를 베이스로 종결된 사안, 종결 처리 중인 사안, 계속 추진 중인 사안을 문서로 주고받았다. 양군 간에 가장 밑바닥의 실무진이야 같이 대응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견 교환이야 이루어지지만, 근무 일지나 인수인계는 각자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 측 지휘부와 미군 측 지휘부가 각자 자기네 보고서를 기반으로 회의를 할 때에 미군 측에서만 보고가 되는 사안이 없도록 꼼꼼하게 확인을 해야 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을 해서 처음 취업을 할 때, 우리나라는 막 IMF 사태에 진입한 시기였다. 그 이전부터 이어져오던 사회시스템이 막 망가지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대기업 계열의 금융업을 영위하는 회사가 첫 직장이다. 이 당시, 은행이나 대기업에서는 정식 근무시간보다 2,30분 먼저 부서별, 또는 직급별로 모여서 '조회'라는 것을 하였는데, 내가 소속된 전산실에서는 주로 전날까지의 업무내용의 정리 및 그날 계획된 업무에 대한 재확인이 이루어졌고, 보통 일주일 정도의 업무는 특별한 인시던트가 발생하지 않는 한, 미리 계획된 업무 내에서 이루어졌다. 금융회사다 보니, 회계팀이나 고객 대응 창구 쪽에서 작업 의뢰가 자주 들어오는데, 이 당시에는 모두 해당 부서장이 확인한 '작업 의뢰서'라는 문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아주 급한 경우에는 먼저 구두로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반드시 그날 안에 '작업 의뢰서'가 제출되었다. 그러니까 문서를 기반으로 근거가 없는 작업은 이루어지 않는 '시스템'이 확고했다.
2002년 가을, 처음으로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사장과 사장의 비서, 나만 한국인이고 다른 모든 직원은 일본인인 회사. 매일 아침 일본식 조회가 이루어졌다. 사장과 비서를 제외한 전 사원이 업무 시작 1시간 전에 모여서 전날 수행한 업무와 그날 예정된 업무에 대한 보고를 하고, 그 업무와 관련된 타 부서 사람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이다. 이걸 하려면, 당연히 전날 퇴근할 때 미리 그날 일을 정리하고 다음날 일을 계획해 둬야 한다. 이러한 일정은 오프라인에서 모이는 방식에서 이메일이나 공유 네트워크 드라이브를 이용하여 소통하는 방식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일본에서의 18년 직장 생활 동안 계속되었다.
여기에 하나 더, 일본의 악명(?) 높은 '공수(工数) 관리'가 있다. 회사 규모나 방침에 따라서 조금은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운영하는 방식은 이렇다. 근무시간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이벤트를 미리 정의해 둔다. XX 시스템 개발, 고객 면담, 공수관리, 업무보고, 업무 미팅, 업무상 이동, 법정 휴식시간, 업무 대기, 잡무 등등. 그리고, 회사 또는 근무지에 출근하여 타임카드를 찍은 순간부터 퇴근할 때까지를 모두 정해진 단위 - 보통 빡빡한 회사는 10분, 널럴한 회사는 30분 -로 기록해서 제출한다.
져 연차 사원일 때는 조회나 디지털 기반 업무 보고서를 바탕으로 바로 위 관리 역할을 맡은 사람과 상담을 한다. 할당된 업무가 수월했는지 버거웠는지, 왜 계획된 일정을 맞추지 못했는지,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스킬이나 교육에 대한 의견 교환이 주된 내용이다. 개발 회사는 관리 역할을 맡은 사람은 직급과는 상관없이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팀의 매니저나 작업 현장의 매니저가 맡아서 하는데, 할당된 사원들의 업무보고와 상담 내용을 정리하여 위트 관리자에게 상담 또는 보고를 한다.
이러한 공수관리와 업무보고를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사 또는 해당 업계 개발자들에 대한 표준모델이 만들어지고, 이 모델을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수주할 때 필요한 인적자원과 기간을 산정하는 능력이나 습관이 몸에 배는 거다. 사실, 일본이라고 모든 회사에서 이런 관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다닌 다섯 회사는 '거래처'가 대부분 관공서, 방송국, 상사, 외국계 합자회사 등이다 보니, 해당 거래처의 요구에 맞추어서 이쪽도 관리를 엄격하게 했다.
이렇게 몸에 밴 습관과 인식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2020년 가을에 일본 생활을 접고 영구 귀국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아직은 코로나19의 시련이 끝나지 않았던 시기라 귀국을 하면 격리시설에 들어가야 하는데, 서울시와 주민등록이 등록된 구청과 격리 장소가 위치한 관할 구청에서 문서로 확답을 주지 않는다. 내 경우에 해당하는 사안이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서,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리기만 한다. 세 곳에 각각 수차례 국제전화를 한끝에 '시설 격리 통지서'를 받아내었는데, 원래 머물려던 곳이 아니라 중구의 한 호텔로 들어가야 했다. 격리 기간이 끝난 다음에는 재적사찰에서 진행하는 신도교육에 참여하였는데, 세상에나 종무원의 교육담당자가 교육일정이 바뀌었는데 공지를 하지 않는 황당한 일이 생긴다. 교육을 하러 오신 스님도 당황하고, 교육을 받으러 온 신도들도 당황하고... 프리랜서로 참여한 프로젝트에서는 멋대로 일정을 바꾸고는 연락을 직전에 하질 않나, 업무 미팅을 했는데, 주관한 측에서 회의에 필요한 자료나 회의안건을 알려주지도 않거나, 회의 종료 뒤에 합의사항이 기재된 회의록을 공유하지 않는 일이 매달 일어났다. 법당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할 때는 당사자인 내게는 알리지도 않고, 내 봉산 내용과 일정이 멋대로 바뀌고... 배우고 있는 전통음악 시간에는 사전 통보나 상의도 없이 커리큘럼이 바뀐다.
이럴 때마다 나 혼자 뿔 받아, 성질내고, 혼자서 급발진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영상 제작을 위한 활동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진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