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글] 우리는 정말로 의사소통이 되고 있는

걸까?

by 난말이지

여러 가지 우려사항을 공부모임의 강사를 맡고 있는 두 분에게 전달했다.

처음에는 우리 쪽의 전달사항을 수긍하고 우리 뜻을 따르겠다는 식으로 나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태도가 바뀌고, 내뱉은 말의 해석이 달라진다.

분명 같은 한국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나누었을 텐데, 같은 발언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서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한다.

이건 뭐지?

우리가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정치'였나?


같은 말, 같은 용어, 또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정말로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듣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걸까?


'채식'이란 말을 가지고 생각해 보았다.

채식(菜食)은 한자 뜻대로 면 '나물을 먹는다'는 뜻이고, 보통은 '고기를 피하고 곡물, 채소, 과일 등 식물성 음식을 먹는 식습관'을 뜻한다.

그럼, '채식주의'는 단순히 말뜻대로면, 채식만 하겠다는 신념이나 태도나 경향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서구의 영향으로 채식주의(Vegetarianism)는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넘어, 환경, 윤리, 건강 등 다양한 이유로 육류 섭취를 피하거나 줄이는 식습관과 생활 방식을 말하기도 한다.


이 서구식 채식은 허용하는 음식의 범위에 따라 단어가 다르다.

비건 (Vegan): 가장 엄격한 단계로, 고기뿐만 아니라 유제품, 달걀, 꿀 등 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다. 가죽이나 실크 같은 동물성 제품 사용도 피한다.

​락토 (Lacto): 고기와 달걀은 먹지 않지만, 우유나 치즈 같은 유제품은 허용한다.

​오보 (Ovo): 고기와 유제품은 먹지 않지만, 달걀은 허용한다.

​락토-오보 (Lacto-Ovo): 고기는 먹지 않지만, 유제품과 달걀은 먹는다.

​페스코 (Pesco): 육류는 먹지 않지만, 생선과 해산물은 먹는다.

​폴로 (Pollo): 붉은 고기(돼지, 소)는 먹지 않지만, 닭고기 같은 가금류는 먹는다.

​플렉시테리언 (Flexitarian): 평소에는 채식을 주로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육식을 병행한다.


아...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개인의 신념과 취향은 (그것이 반인륜적인 것이 아니라면) 존중하지만, 그걸 위해서, 저 복잡한 것을 다 외우고 있어야 하는 건가?


요즘 많이 듣는 게 인도는 채식주의자의 천국이라는 소리다.

실제로 인도는 채식 레스토랑이 많다.

실제와는 다르지만, 인도인은 다 채식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고.

실제로는 브라만 계층의 상류층이나 자이나교도 같은 상류층이 채식을 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육식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채식을 하는 척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왜 유목민이었던 아리아인의 사제 계급인 브라만 계층은 채식을 했을까?

진실은 모르지만, 내가 배운 바를 바탕으로 추측해 보면, 이렇다.

하라파 문명이 사라진 뒤에 인도 대륙의 서북부를 통해서 들어온 아리아들은 죽으면, 두 갈래로 갈라진다고 믿었다.

스스로가 브라만의 일부임을 진짜로 깨달은 사람들은 브라만에게 돌아가 다시 태어나지 않는 범도(梵道)와

그렇지 않은 일반인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의 모든 조상들이 거쳐갔던 조상의 세계로 나중에 다시 현세로 태어나는 조도(祖道).

어느 종교도 마찬가지겠지만, 제사는 아주 중요하다. 브라만교에서 제사는 종류마다 철저하게 의미를 알고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제 계급인 브라만들이 평생을 공부하고 익혀서 전담해야만 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업, 까르마는 브라만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행위를 가르기는 말이었다. 브라만이 제사를 지낼 때 희생물로 선택된 동물을 죽여한다.

그런데, 브라만들은 내가 제사를 위해 죽인 동물이 조도로 올라가 기다리고 있다가 본인이 죽어 올라가면 똑같이 되 같아 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제사를 위해 동물을 죽일 때, 동의를 구하고 죽였다. 이러한 믿음이 육식을 꺼리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이나교인들은 물활론(Hylozoism/Animism, 物活論)을 믿었다. 물활론은 우주의 모든 만물, 심지어 무생물처럼 보이는 흙, 물, 불, 공기 등에도 Jīva(지바)이 깃들어 있어 살아있는 것과 같다고 보는 근본적인 존재론적 관점이다.

이 믿음 때문에 5계 중에 가장 중요한, 우리가 불살생이라고 번역하는 Ahiṃsā(아힘사)라는 계율을 지키며, 이 계율 때문에 채식을 한다.

채식도 그 식물의 생명이 끊기면 안 되기 때문에, 뿌리채소는 먹지 않고, 열매나 이파리, 뿌리윗둥을 잘라도 죽지 않고 계속 자라는 채소만 먹는다. 그러니까, 서구의 비건보다도 엄격한 것이다.


한번 상상을 해보았다.

이런 다양한 사상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배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채식을 합니다"라는 말을 나누면, 그것을 정말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로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걸까?


같은 사람끼리도 제대로 된 의도를 전달하기 힘드니, 생성형 ai에게 내 의도를 전달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