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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 흔한 길고양이의 죽음

그들의 고난은 내게 머문다, 기약도 없이

by 구름 수집가

대개 7시 20분쯤 시작하는 나의 출근길은

집에서부터 대략 15분 거리 정도의 짧은 거리이다.


그 출근길엔 별 생각을 다한다.


어제 속썩인 민원인 녀석,

어제에 이어 오늘 해야할 공문 처리,

지금 흘러 나오는 캐롤 원곡자는 자살을 했다지,

디카페인 커피엔 정말 카페인이 없을지,

생각만 해도 증오가 시전되다가

이내 그 미움마저 잊고 마는 인간들 등등.


바꿔 말하면, 별 생각을 하진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그 출근 길에서 어느 날은

까만 고양이의 죽음을 목격했다.


나는 유독 작고 여린 것들의 고난에 취약하다.


여행 가방에 들어가 뜨거운 드라이 바람에

생을 다한 어린 목숨이나,

추운 겨울에 베란다에 묶여 똥오줌을 흘리다가

숨을 거둔 어린이나,

서해바다의 누런 물 속에서

교육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방심의 결과로

바다의 혼이 돼 버린 어린 청년들의 이야기는

내게 실제에 가까운 공포와 두려움의 플롯이 된다.

그들은 내 귓가에

자신들의 고통을 속삭인다.


좌회전 신호 하나만 받으면 되는 도착 3분 전

그 정지선을 향해 나는 속도를 천천히 줄여가고 있었다.


40킬로,

30킬로,

15킬로,


그 줄어가는 속도 속에서 상대적으로 점점

시선에 들어오며 가까워오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반대편 도로에서 중앙선 쪽으로

맥없이 걸쳐 있었다.

당황한 나는 어서 빨리, 어서 빨리 제발

좌회전 신호가 켜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옆에 차를 정차하여 그것의 미처 식지 않은

소름끼치는 온기를 느낄 순 없었다.


그러나 신호는 켜지지 않았고,

차들은 정지선 뒤로 차곡차곡 쌓여가며

나는 내 차는 도리 없이 그 검은 물체의 옆에 멈춰 섰다.


검은 것은 도화지 위의 그림처럼 바닥에 납작 눌린 채

마지막 남은 생명의 꼬리짓을 하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녀석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단번에 끊어지지 않은 지겨운 목숨은

꼬리 끝에만 남아 마지막 신호를 보냈지만

나는 그것이 두려울 뿐 해석할 수 없었다.

단지, 그 검은 꼬리는 한껏 치켜올려졌다가

이 상황이 진정 납득되지 않고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닥을 한번 탁 하고 쳤다.


별 생각이 없는 15분의 출근 길에서

나는 작고 여린 것이

자기 앞의 생을 놓는 광경을 보았다.


길고양이의 죽음만큼이나 흔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길고양이의 죽음만큼이나 흔한

출근 길을 거듭하며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을 누르고,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를 노려보며 내리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 흔한 일이다.




나는 작고 여린 것들과 호흡을 같이한다.


무어라도 쓰지 않고는 숨이 쉬어지지 않아,

낯선이의 담배 연기를 잉크 삼아

이를 기록한다.


이 곳에

'작고 여린 것들'이라는 키워드는 없겠지.


다만 충동적인 글쓰기가

내게 호흡을 되찾아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