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국어생활은 대부분 지식이 아니라 태도가 결정한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이 태도는 매우 확장적이다. 지키지 않아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맞춤법까지 잘 지켜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세상의 원칙과 규칙을 대하는 태도 또한 바르고 곧은 것을 지향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진짜 국어 교육이고 언어 교육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눈앞에 층별 강의실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자주 가지 않는 건물의 엘리베이터였는데 안내문에 오타가 있었다. 무엇이든 글자가 있는 것들을 눈여겨보는 것이 오랜 직업병이고, 관공서를 비롯한 많은 건물들에서 자주 발견하는 오타는 그렇게 드물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것이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누군가의 선량하고 기특한(?) 낙서 때문이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보세요.
'과학공용가의실'에 빠진 종성 ㅇ을 누군가가 써넣었다. 필체에 성의는 좀 없어 보이고 ㅇ을 붙여 넣었더라도 자형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우리 학교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의외의 장면이다. 그 상황에 대한 상상을 마음대로 펼쳐보았다.
- 학생일까, 선생님일까?
- (오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일까, (오타를) 자주 보던 사람일까?
- 장난이었을까, 사뭇 진지한 마음이었을까?
- 혼자 있을 때였을까, 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였을까?
- (처음 보았을 때) 나라면 써넣었을까, 지나쳤을까?
과학도를 꿈꾸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국어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가르치는 일은 때로 바닷가에서 목청껏 대사 연습을 하는 눈치 없는 무명배우 같은 기분이 되는 일이다. 파도도, 모래도, 작은 소라게도 열심히 제 할 일을 하는 그곳에서 나만 홀로 무의미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다. 비장하다가도 뻘쭘해지고 애가 타다가도 무던해진다. 이곳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란 종종 작은 개미 한 마리로서 바닷물을 다 마시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일이 된다. 이곳에서 국어, 역사, 음악 선생들은 바닷물을 마시려는 개미들의 모임 같이 위축되고 고독하다.
그러다가도 '그래, 이 정도면 됐지.' 하며 너그러워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바로 이 게시판을 만났을 때 그랬다.
우리 아이들이 국어를 좀 못하고 저 어디 영어권 국가에서 온 듯한 조금 많이 이상한 문장을 쓰고 고급 어휘를 멀리하며 간지러워하면 좀 어떤가. 저렇게 틀린 표현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고쳐 쓰고 싶은 마음을 가진 거라면 됐다 싶다. 물론 저 게시판은 단순 실수지만 그렇게 잘못 사용된 국어를 좀 제대로 고쳐 놓고 싶어 하는 기특한 마음에 나와 함께하는 약간의 국어 지식이 더해진다면 자신만의 교실 밖 국어생활도 훌륭히 해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어차피 나도 국어 문법은 매일매일 새로워 언제나 배우고 익힌다.
20년 가까이 국어 선생을 하면서 바른 국어생활은 대부분 지식이 아니라 태도가 결정함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맞춤법을 의식하되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를 꼭 거친다. 그것은 내 문장에 대한 태도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 태도는 확장적이다. 지키지 않아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맞춤법까지 잘 지켜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세상의 원칙과 규칙을 대하는 태도 또한 바르고 곧은 것을 지향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진짜 국어 교육이고 언어 교육이다.
세종이 만든 한글은 쉬운데 한글 맞춤법은 어렵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청소년의 언어생활이 문제라는 얘기도 자주 들린다. 또 한편으로는 맞춤법 잘 몰라도 언어생활은 다들 잘하지 않냐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저렇게 듣고 말하고 쓰고 읽는 일상의 순간을 살아가며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고 바르게 쓰고 싶은 마음만은 있었으면 좋겠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바르고 정확한 것을 지향하고 싶은 마음과 태도, 그거면 충분하다. 선생의 고질병일 수도 있고 꿈보다 멋진 해몽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이런 마음을 발견할 때면 그날은 바닷물은 다 못 마시더라도 1000피스의 퍼즐이라도 다 맞출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