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역사성: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음운이나 어휘 등의 측면에서 생성, 성장, 소멸하며 변화하는 특성.
오늘 우리 갈 때 재영이도 왔더라, 그치. 맞아 엄마. 엄마, 그런데 친구들이 자꾸 나를 수.완.이라고 해. 난 수.환.인데. 아, 그래? 그리고 재영이가 아니라 재.형.이야. 이재형. 아,그래? 미안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그 언어의 집에 인간이 산다고 했다.
언어생활을 하다 보면 하이데거의 말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많다. 살아가는 나, 생각하는 나, 행동하는 나, 그 앞뒤에 모두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심코 던진 아픈 말, 나 자신은 '말실수'라고 넘기고 싶은 한 마디 한 마디에 타인은 '나'라는 존재의 대륙을 발견하고, 그 신대륙에는 내가 뱉은 말들로 '나'라는 존재의 집이 터를 올린다. 그럴 때면 나의 집에 언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라는 존재의 집에 내가 얹혀살고 있는 듯한 순간과 마주한다.
그러나 존재의 집도 영원불멸의 모습은 아니다. 나라는 존재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맞이하듯 내가 얹혀사는 존재의 집 자체도 변화를 맞는다. 그 내용도, 그 형식도.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반포 당시 28개의 자모자를 만들었는데 그중 반치음(ㅿ), 옛 이응(ㆁ), 여린히읗(ㆆ), 아래아(ㆍ) 등은 현재 사용되지 않는 소멸된 자모자이다. 반치음은 임진왜란 전후로 소멸됐고, 아래아는 소리가 먼저 소멸되었지만 표기의 보수성으로 인해 계속 쓰이다가 개화기 이후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러한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몇 백 년 후에는 현재 쓰이고 있는 자모자 가운데 발음이 변하거나 심지어 사라지는 자모자가 존재하지 않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아홉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아들은 '수환'이라는 자기 이름과 친구 이름 속 ㅎ을 지키고 싶어하지만 문법 전공인 엄마조차도 이를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지극히 먼 훗날에 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우리말 글자의 흥망성쇠를 '안녕하세요'라는 단어로 펼쳐 보고자 한다.
1. 'ㅎ'
ㅎ은 현재 음가의 지위로 보았을 때 그 위상이 가장 불안정한 자음자이다. 후음(목구멍소리) ㅇ의 격음으로 기본자에서 획을 더한 '가획'의 원리로 만들어진 ㅎ은 기본 자음자 14개 중 하나의 지위를 인정받아 우리말 단어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ㅎ은 단어의 종성에서 발음상 규칙적으로 탈락하고, 단어의 중간 음절에서는 초성에서도 그 음가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일례로 '좋아하다[조아하다]'라는 단어에 사용된 ㅎ은 2개인데, 종성에서는 음운 변동상 ㅎ탈락 규칙이 적용되고 초성에서는 거의 발음되지 않는다. 물론 전자는 규칙이고 후자는 불규칙이다. 그러나 어떤 음가의 탈락이 규칙적이라는 것은 그 음가의 경제성과 편의성, 안정성이 타 음가에 비해 상당히 떨어짐을 의미하며, 불규칙한 음가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 또한 언중의 음가 인식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녕하세요'에서도 마찬가지로 ㅎ은 제대로 발음이 구현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현재로서는 ㅎ에 여전한 음소적 지위가 있기에 소멸될 가능성을 점쳐본다는 것 자체가 무리스러워 보이지만 과거의 사례를 바탕으로 몇 백 년 후의 우리의 말글의 모습을 추측해 본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우리말글살이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이다.
2. 'ㅛ'
다음으로 우리말 어미에 자주 사용되는'ㅛ' 발음을 살펴보자. 'ㅛ'는 기본 단모음 'ㅣ'와 'ㅗ'가 결합한 이중 모음으로 입술을 둥글게 오므리고 발음하는 'ㅗ' 모음 계열의 원순 모음이다.
그런데 최근 현대 국어 발음을 살펴보면 어말어미에서 이것이 평순모음화 되어 발음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평순모음화란 입술을 둥글게 오므리고 발음하는 'ㅗ'나 'ㅜ' 등의 원순 모음이 입술을 둥글게 오므리지 않고 발음하는 모음인 비 원순 모음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안녕하세요'와 같은 단어의 끝(어말)에서 이러한 현상은 특히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발음을 유심히 들어보면 오히려 'ㅛ' 발음을 제대로 하는 경우를 발견하기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ㅛ' 모음이 어말에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실될 가능성을 높게 보긴 어렵겠지만 언젠가는 발음의 위상이 격하되면서 표기법에서의 변화가 생길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과정을 생각하며 자모자의 운명을 타진해 보는 것이 과연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 언어는 존재의 집이지만 그 존재는 강력한 의지를 지닌 인간 자체이다. 다시 말해 언어의 생성, 변화, 소멸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언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7천여 개의 언어(음성언어)가 존재하지만 이 중 기록 가능한 기능을 수행하는 문자언어는 300여 개에 그치고,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문자는 한글을 포함하여 28여 개에 불과하다. 특히 한글은 적은 수의 자모자로 많은 소리를 구현해 내는 음소적 자질이 우수한 문자로 평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성이나 편의성을 이유로 제대로 발음하지 않거나 무심하게 사용하는 자모자의 운명을 언젠가 소실이라는 결과로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마치 갈빗대 하나가 빠져나간 듯한 허전함을 느낄 것만 같다. 경제성과 편의성은 언중이 언어생활을 하는 중요한 기준과 잣대이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자모자 중 어느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래서 더욱 힘주어 발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