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뻡

뜨거움과 따뜻함 사이, 감정은 유의어가 없다

형태론 2. 형용사

by 구름 수집가
형용사 [언어]
품사의 하나. 사람이나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 존재의 어떠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국어의 경우, 활용을 하기 때문에 동사와 함께 용언으로 분류된다.


형용사는 국어의 아홉 품사 중 하나로, 동사와 더불어 형태를 변화하여 사용하는 용언에 속한다. 언뜻 보기에는 문장에서 다양한 활용형을 통해 주체를 서술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동사와 유사해 보이지만 그 활용은 동사와 많이 달라 제법 까다롭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이나 사물의 물리적 동작·작용을 나타내는 동사와 달리 사람이나 사물의 화학적 성질이나 상태를 주로 나타내는 만큼 그 의미의 폭과 깊이의 다양성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품사이다. 그러고 보면 형용사는 참 인간적이다.


1. 뜨거움과 따뜻함 사이, 그 어디쯤


한 줄기 소낙비가 그친 한 여름의 어느 날 목격한 무지개 같은 어떤 것을 보고 그 색깔 그대로를 표현해 내기 위해 우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색깔 형용사들을 낱낱이 훑어보는 경험을 한다. 도시의 빛공해를 떠나 당도한 산골 마을의 어둑한 밤하늘을 '검다'라고만 하기에는 왠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40도를 육박하는 한여름의 폭염 속에서 어쩌면 인간이 피부 호흡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숨도 제대로 들이쉬기 힘든 그 뜨거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때때로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하곤 한다. '문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고도 한다. 결국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말했는지 모를 빨주노초파남보로 무지개의 색을 호명해버리듯.


이것은 우리가 언어와 실재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이러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문제이기도 하고, 그에 앞서 언어 주체가 스스로 혹은 대상에 대한 정확한 느낌과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형용사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제대로 구사하고 있는가에 대한 현실적 질문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상과 의미를 최근접화한 표현은 인지언어학적 입장에서는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도 하지만,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서만큼은 영영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


아래 한 장의 사진을 가만히 본다.

그리고 내 안의 형용사를 하나 둘 꺼내 본다.


그것은 따뜻하기도 하고 훈훈하고 뜨겁기도 하다. 외려 춥기도 하고 서늘하며 쌀쌀하기도 하다. 거무스름하기도 하고 아스라이 밝고 불그스레하기도 하다. 거칠기도 하고 단단하며 투박하기도 하다. 어렴풋하고 희미하기도 하고, 아련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2. 말하지 않아, 사라져 가는 형용사


그런데 사람들의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형용사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위 형용사 중에서 백여 년쯤 뒤 가장 분명하게 살아남는 것은 뜨겁다춥다 정도 아닐까. 우리는 '춥다'라는 상태를 '서늘하다' 혹은 '쌀쌀하다' 등으로 표현하기보다 '조금 춥다' 혹은 '꽤 춥다' 등으로 사용하는 것에 좀 더 익숙함을 느낀다. 형용사를 새로이 찾기보다는 알고 있는 형용사에 정도 부사를 갖다 붙이는 것이 좀 더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감정 형용사의 형편은 더욱 옹색하다. 한때 부정적 감정을 표현해 주는 감정 형용사의 대표 주자는 '짜증 나다'였다. 싫거나 무섭거나 지루하거나 언짢거나 울적하거나 좌절하거나 창피하거나 비참하거나 불편하거나 불쾌하거나 씁쓸하거나 야속하거나 후회스럽거나 허탈하거나 등과 같은 감정과는 무관하게 그저 짜증 난다 한 단어로 모든 감정이 갈음되곤 했다. 심지어 덥거나 춥거나 아프거나 등과 같은 상태마저도 짜증 난다 한 마디로 정리하곤 하는 숱한 장면들에 홀로 심각해져 형용사의 앞날을 걱정해 보기도 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감정 형용사가 사라진, 제대로 된 감정 형용사로 나의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은 실로 사막처럼, 무채색 그림처럼 무미건조하고 삭막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감정을 잊혀가는 감정 형용사를 통해 형형 색색 명도와 채도가 생명력 있게 살아 넘치는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낼 수 있다면 우리들의 삶 또한 그처럼 생동하게 되지 않을까. 감정과 상태는 실로 그 경계가 흐릿하여 어쩌면 유의어 관계로 대체되기보다는 개별적 단어로 표현하고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을 맞은 은행나무 이파리의 색도 샛노랗기도 하고 노르스름하거나 누르스름하기도 한 것처럼 우리 인간의 감정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기 다른 실체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은 비슷한 경계에 놓인 그저 그런 유의어로 표현되기보다는 그 감정의 실체에 좀 더 접근된 단어로 표현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상기한다.

형용사는 참으로 사람 그 자체를 무척이나 많이 닮아 있다.

올 가을은 이렇게 묻혀 있는 형용사를 불러내어 단조로운 내 삶을 어여쁘게 단장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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