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문뻡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문법

통사론 2. '-지만'의 문법

by 구름 수집가
-지만

용언이나 ‘이다’의 어간 또는 선어말 어미 ‘-었-’, ‘-겠-’의 뒤에 붙어, 앞의 말을 인정하면서 뒤 절에 그와 상반되는 사실이 이어짐을 나타내는 말.


때는 2012년 새해가 밝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학기 마무리하느라 한창이지? 많이 바쁘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학긴데 너 시간 될 때 자몽차 한 잔 하자."

대학원 연구실에서 진도가 나아가지 않는 머리 아픈 작업을 하던 중 켜진 메시지에 갑자기 모든 두뇌 활동이 일시 정지되면서 작업을 중단했다.

아마도 선배는 이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녀는 현재 대학원 수료를 앞둔 마지막 학기이다.

-그녀는 지금 주변 살펴볼 여유 없이 무척이나 바쁠 것이다.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몽차 한 잔을 그리워할 사람이다.

-그녀를, 만나야겠다.


바쁜 것 다 알지만 얼마 남지 않은 대학원 시간의 한 허리를 버혀내어 마음 편히 함께 하고 싶다는... 선배의 메시지에 밤이 외롭지 않았다.


'-지만'의 문법은 겉보기처럼 궁극의 부정에 관한 문법은 아니다. 오히려 앞의 말에 대한 인정을 전제로 한 문법이다. 그러나 앞말과 뒷말 어디에 방점을 찍어 의미를 전달하느냐에 따라 그 말이 깔고 있는 풍경이 새삼 달라진다.

그래서 때로는 앞말에 대한 관용이 아닌 뒷말에 대한 고집, 상대에 대한 인정이 아닌 자신에 대한 변명, 상호적인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불통의 메시지를 담는 치졸한 문법이 되기도 한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다음 문장들은 앞말에 대한 인정이라기보다는 뒤 절에 오는 상반되는 사실에 대한 강조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최선을 다했지만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만'의 문법이 언제나 이렇게 고집과 변명과 불통의 메시지만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로 안 된다는 것을 다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고, 보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들을 품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너에게 정말 미안해.

-구할 수는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구하고자 했습니다.

-많이 바쁘겠지만 꼭 만나고 싶어.


이때, 우리는 언어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의 '언덕'을 낑낑거리며 넘고 있는 중이다. 어쩔 수 없고, 바쁜 것을 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고, 꼭 만나고 싶은 마음을 그 언덕 너머로 힘껏 밀어 올려 보내고 있는 중인 것이다. 늘 그렇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나고 싶고 전하고 싶은 진심들이 있으니까. 그럴 때 '-지만'의 문법은 말하는 이의 언어 이면에 수줍게 감춰져 있는 진짜 마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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