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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Aug 28. 2023

"좋은 날 오겠지."라는 말

삶에 대한 이상한 위로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인생의 함정들


최근에 나는 TV를 종종 시청한다. 사실 그전까지 약 십여 년 동안 나는 TV를 잘 보지 않았다. TV와 거리를 둔 것은 아기를 출산하면서부터였는데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볼 시간이 없었고 아이가 조금 크니 TV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한 드라마가 임신 중 태교 하는 마음으로 보았던 '선덕여왕'(MBC, 2009년 방영)이었다고 하면 다들 놀라워한다.


그런데 요즘은 TV를 본다. 별로 보고 싶은 것이 없는데도 큰 기대감 없이 채널을 위로 아래로 옮겨 본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 듯싶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도, 엄마도 그러하셨으니까.


요즘은 그래서 목요일 오후 JTBC의 '한문철의 블랙박스 리뷰'를 챙겨 보는 편이다. 매력 포인트는 '세상만사의 (위험한) 이야기'. 한블리를 보며 욕을 하고 분노를 하고 호들갑을 떨다가 문득 내가 이렇게 무사고에 가깝게 20여 년을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진다. 심야 운전을 하다가 커다란 돌덩이가 내 차 앞으로 흘러내린 적도 없었고, 우회전을 하다가 길거리에 누워 있는 사람을 발견한 적도 없었으며, 고속도로를 가다가 졸음운전으로 나를 위협하는 트럭도 없었다. 그러면서 저절로 나의 지금을 '좋은 날', '감사한 날'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번 봐 보세요.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인생의 함정들이 있어서 언제라도 발이 빠지는 것이 온당할 지경이다. 결코 겪고 싶지 않은, 그러나 하나도 낯설지 않은 함정들을 몇 개만 나열해 본다.


시험에 떨어졌다.

교통사고가 났다.

가족과 다투었다.

절친과 손절을 했다.

구설수에 올랐다.

주식 투자에 실패했다.

범죄의 대상이 되었다.

병에 걸렸다.


이럴 수가. 그저 생각나는 대로 써 보기만 한 건데 나는 이 모든 것을 겪어 보았다. 그런데 지금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왜지?


[유리 창문으로 바깥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나와 일상을 잠시 분리하는 매력이 있다.]


'좋은 날 오겠지.'라는 엄마의 말


몇 년 전 엄마께서는 내게 전화를 걸어 간단한 수술을 하시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평소 같았으면 꼬치꼬치 캐묻고 따졌을 테지만 수술 자체가 너무 흔한 것이라 나는 엄마가 알아본 대로 하시도록 했는데, 그래도 수술은 수술인지라 동행해 주었으면 하는 엄마의 은근한 말씀이 있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날이 제법 추웠던 어느 겨울, 수술실에 들어간 엄마를 기다리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제 나는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 병원에 있었다. 자연스러운 일이건만 반갑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수술을 끝낸 엄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매일 경과를 묻는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고령의 나이 때문이었는지 의사의 수술 실력 때문이었는지 엄마의 수술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재수술을 해야 할 지경이었지만 엄마는 괜찮다며, 괜찮을 거라며 거부하셨다.

밥도 잘 못 드시고 외출도 못하시는 엄마의 시간이 흘러갔다. 자주 전화를 드리는 것이 오히려 엄마의 일상을 건드리는 일이 될까 봐 드문드문 일상의 안부를 묻는 척 전화를 했다. 그때 엄마는 가라앉은, 그러나 분명 힘 있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 괜찮다. 좋은 날 오겠지."


[운전은 재밌다. 특히 구름이 있는 날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자 그렇게 되리라는 마법의 주문 같은 말


그때는 그 말을 무심코 넘겼다. 정작 당사자는 태연한데 자식들이 걱정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느 순간 그 말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엄마에게 좋은 날은 어떤 날이었을까.

자식 입장에서 볼 때 엄마에게 좋은 날은 '없었다.'

그저 그 말은 엄마를 지키는, 엄마를 지탱해 주는 주술같은 문장이었을까.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엄마의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은 D-DAY 같기만 한데. 

 

그리고 그 말을 똑같이 되뇌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저 몇 가지 인생의 함정 가운데 아주 최근 나를 힘들게 했던 몇몇 사건들을 겪으면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찾지 못해 늘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밥을 먹지 못할 만큼, 운전대를 잡지 못할 만큼, 서 있기조차 어렵고 그 어떤 표정도 꾸며내지 못할 만큼 힘들었던 함정은 타인에게도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것들이었고, 그래서 자꾸만 나 스스로에게 무겁게 침전하여 '그래서 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1번부터 정답을 몰라 지독히 헤매는 수험생처럼 시간을 보냈고 결국 나는 답 아닌 답을 지난날의 엄마의 말에서 찾게 되었다.


"좋은 날 오겠지."


이상하게도 마음의 평형을 되찾아주는 그 말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자, 꼭 그렇게 되리라는 마법의 주문 같은 말이었다. 현실을 외면하는 말처럼 느껴지다가도 지극히 현실적인 말처럼 되돌아왔다. 그랬다. 이보다 더 진실한 인생의 진리는 없었다. 그 증거는 바로 나 자신이다. 이렇게 멀쩡하게 오늘도 게으름을 피우며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가끔 아니 자주 소리 내어 특이하게 웃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우리는 쉽게 시험에 떨어지고, 교통사고가 나고, 가족과 다투고, 절친과 손절하고, 구설수에 오르고, 주식 투자에 실패하고, 범죄의 대상이 되고, 병에 걸린다. 그리고 이를 대부분 반복한다. 그러나 좋은 날은 온다. 사기꾼 같은 대주주가 꼴사납게 버티고 있을지라도 어느 순간 뻥튀기처럼 내 주식이 두 배가 세 배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유효하니까. 절친과 아프게 손절했어도 그것은 잊지 못할 짜릿한 경험이니까.

그러고 보면 좋은 날이란, 좋지 않았던 날의 다음 날인지도 모르겠다. 한블리를 보다가 문득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겸허한 인지인지도 모르겠다. 일기장에 아무것도 기록할 것이 없는 제목 없는 어떤 하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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