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랑 같이 살 줄은 몰랐어
우리 집엔 인간 셋과 함께 고양이 한 마리가 산다.
고양이,
고양이,
고오아양이이!
고양이와 같이 살 줄은 정말로 몰랐기에 처음엔 그 단어가 입에도 잘 붙지 않을 정도로 생소한 존재였다.
2020년 3월, 코로나 시국이 거대한 위협을 가하며 온 나라가 각자의 위기감에 젖어가던 시절, 우리 집 가족들은 쌩뚱맞은 선택을 했다. 바로 고양이를 입양하는 것.
시작은 등교가 중단되어 혼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아들의 요청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정보도 없이 고양이를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강아지나 고양이나 반려 동물을 기르는 것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소중한 생명을 애지중지, 그렇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면 되는 거 아닐까 했을 뿐이다. 고양이에 대한 정보야 널리고 널린 인터넷 정보들이 있으니까 안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고양이를 공부하게 될 줄은 몰랐어
첫 걸음은 외계어같기만 한 고양이 용어였다. 집사, 젤리, 아깽이 같은 그래도 한번씩은 어디서든 들어봄직한 말에서부터 뚱냥이, 냥아치, 돼냥이같이 들으면 바로 알겠는 사랑스러운 말, 그리고 츄르, 숨숨집, 골골송, 우다다, 맛동산, 꾹꾹이, 식빵 굽기처럼 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듣도보도 못한 말들까지 고양이 용어에 대한 배움의 길은 멀지만 꾹꾹 다 밟으며 가고 싶은 길이었다. 한 세계의 언어는 그 세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한다. 세상의 그많은 반려 동물 가운데 오직 고양이만을 위해 존재하는 이 단어들은 나를 매우 고무시켰다. 고양이라는 세계에 발을 내딛었다는 느낌은 낯선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사실상 가장 험난한 배움과 공존을 위한 맞춤의 길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일이었다.
고양이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지금부터 쓰는 글은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사람들이 꼭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우선 고양이의 털은 매우, 매우, 매우 강력하다.
고양이가 성장하고 털을 빗어줘야 할 만큼 자랐을 때 알러지 유발율이 개보다 무려 60배 이상 높다고 하는데 평생을 알러지 없이 살아온 나는 견딜 수 없는 재채기와 콧물에 시달렸고 의사 선생님은 너무도 단조로운 말투로 고양이를 키우면 안 된다고 했다. 그건 마치 사춘기 아들이 말썽을 피우니 내보내라는 말처럼 황당하게 들렸다.
결국 난 고양이 대신 병원을 끊었다.
고양이를 키우면 알러지는 같이 간다고 하셨던 그분 말씀과 달리 나는 알러지를 이.겨.냈.다. 내 몸이 적응 기간을 마치고 마침내 고양이 털과의 공존이라는 협상을 끝냈다.
물론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다. 지금도 시시때때로 콧물을 훌쩍이고 아침저녁 민감한 공기질에 따른 재채기와 공존한다. 알러지를 가라앉히는 순한 약의 복용이라는 단서를 달고서말이다.
고양이는 수다스럽다.
냥바냥(*어떤 고양이냐에 따라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 온 녀석은 아주 다양한 수다가 장착된 녀석이었다. 지내다 보니 그 의미도 조금씩은 분별이 된다. 가장 분명한 의사 전달은, 츄르를 달라, 낚싯대를 흥겹게 흔들어라, 저 냄새나는 응가를 치워라, 그만 자고 좀 일어나라 정도인데 이것만 보아도 고양이가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 동물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곤욕스러운 것은 새벽 잠을 깨우는 일인데, 고양이 시계라도 있는 것인지 평일 6시에 기상하는 나를 위해 5시 58분부터 문 앞에서 대기를 타다가 6시가 되면 애처롭게 운다. 집사가 회사를 안 나가면 밥줄이 끊길까봐 걱정이라도 하는 듯이.
그리고 고양이는 사람을 원한다, 아주 강력히.
우리 고양이는 개냥이가 아닌 매우 독립적 성격의 고양이다.
그 증거라면, 일단 사람의 손길을 10초 이상 참아주지 않고 곧바로 입질을 한다. 그리곤 매섭게 쏘아본다.
사람이 30센티 가까이 가서 얼굴을 들이밀면 다시 30센티 후진한다.
필요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헤드 번팅이라든지 하는 친근감의 스킨십이 매우 드물다.
(아침에 일어나면 꼬리로 다리 치기, 벌러덩 눕기 정도는 해 줌.)
이런 우리 고양이도 사람 없이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언젠가 나는 방 안에 있고 가족들이 외출을 했을 때, 고양이는 현관문에 대고 애처로움이 가득한 울음을 길게 내뱉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달려나가 고양이에게 '나는 여기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고양이는 '너 거기 있었어?' 하는 표정으로 겸연쩍게 스크래처를 긁었다. 고양이는 혼자서도 1박 2일 정도는 보낼 수 있는 동물이고 실제로도 그렇기도 하지만 그건 보낼 수 있다뿐이지 집사 없이 혼자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달갑지는 않은 것 같다. 그걸 안 후로부터 우리 가족은 고양이를 두고 1박 이상으로 집을 비우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삶의 변화라는 점을 잘 알아두었으면 한다.
고양이를 마음에 오롯이 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받아들이는 첫 마음은 귀여움, 사랑스러움, 연민 같은 감정적 태도였다. 그러나 3년째 고양이를 키워보니 그 첫 마음은 책임감, 관리 능력, 적절한 지원 등의 현실적 문제여야 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고양이에게 참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양이를 마음에 오롯이 담게 되었다. 좋은데 힘들다기보다, 힘든데 좋다. 그래서 저 작은 생명체가 아프다거나,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것만 같은 저 작고 여린 것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거나, 그래서 그 뒷수습을 하는 일 따위를 상상하는 것은 내게 공황에 가까운 고통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내게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을 생각하며 애써 그 감정을 희석해 보곤 한다.
고양이, 같이 키우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