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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Jan 29. 2024

고양이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

"집사야, 난 그 말이 참 싫었어."

겨울방학 했으니까 할먼네 가!


언제부터인가 집사들의 생활에 대한 레고의 간섭이 점점 심해져 갔다.

 퇴근 후 숨 가쁘게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설거지, 빨래 정리, 청소 등등 집안일을 정리한 후 오후 9시 즈음하여 간신히 소파에라도 앉을 모양이면, 네가 감히 쉴 생각을 하냐는 듯 냐옹냐옹 보챈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고 싶지 않은 내 맘을 두고 보지 않는다.

늦은 잠이라도 조금 자고 싶은 주말 아침 따뜻한 이불속에 있노라면, 다리가 짧은 먼치킨 레고는 침대는 올라갈 생각도 못하면서 방앞에서 냐옹냐옹 울어댄다. 6시에 기상하는 나를 위해 5시 58분쯤부터 문 앞에서 기침 소리를 내다가, 6시가 되면 운다. 이건 진짜다. 게다가 조금만 내 반응이 늦어도 냐옹냐옹이 매우 언짢다는 듯한 아웅아웅이 되어버린다. 하품을 하며 나와 보면 물도, 사료도 충분하고, 내가 더욱 억울한 것은 그렇게 깨워 놓고 본 척 만 척이라는 것.


잠도 휴식도 부족해 좀비가 되어가고 있을 무렵, '너 그렇게 엄마 힘들게 할 거면 할머니네 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고양이를 귀여워하시는 아빠는, 이때다 싶어 그러지 말고 잠깐 여기 데려다 놓고 여행이라도 다녀오지 하셨다. 고양이를 귀여워하지만 조금 쉬고 싶던 나는, 아 그럼 뭐 좀 그러면 그렇게 할까요 싶어 날짜를 잡아버린다. 그리고 다시 레고에게 소리쳤다.

'너 이제 할먼네 갈 거야. 겨울 방학 했으니까 할머니네서 자고 오는 거야. 원래 고양이들은 방학하면 할머니네 가는 거야. '

그럴 때면 내 얼굴을 또렷이 응시하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던 레고는, 할머니 집에 가기로 한 하루 전 병이 났다.


약간은 기다렸다는 듯이 극적으로

평소와 다르게 사료를 먹는 속도가 좀 느려지고 양도 적어진다 싶은지 2,3일 정도가 됐을까. 토요일 아침, 집사들이 식사를 마치고 거실을 서성이자, 약간은 기다렸다는 듯이 극적으로, 레고는 거실 한복판 바닥에 손바닥 반절 만한 크기로 노란색 토를 했다.

가족 모두가 질겁을 하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먹은 것이 적을 때 위액과 함께 내보내는 토라고 한다. 소화가 좀 안 되었나? 북어트릿을 좋다고 먹더니 체했나? 시간을 좀 두고 지켜보려는 동안 레고는 두 번의 토를, 거품 섞인 노란 토를 이어갔다. 그 좋아하는 츄르도 냄새만 맡고 피했으며 화장실 소식도 없었다. '안 되겠다, 이건.'


일요일 저녁, 24시 동물병원

입양한 첫해 몹시 수척해진 얼굴로 '나 아파'를 시전하던 일(그때의 진단은 방광염이었다)을 빼고는 레고는 아주 건강한 고양이였기에 나는 애가 달았다. 이러다 큰일 나지 싶어 근처 동물병원을 검색하여 차 시동을 걸었다. 나는 레고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 동물병원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쓸쓸한 일요일 저녁의 대기 환자 목록.
"아푸다옹."
"대기 환자도 없는데 왜 안들어가냐옹?"
"그래도 미모는 이상 없다옹."
진료 결과: '체함.'


나도 잘 안 해 보는 초음파, 엑스레이, 피검사 등등을 1시간가량 실시한 레고에게 내려진 병명은 '소화불량.' 잘못된 것을 먹거나 장기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캡슐에 가루약을 넣어 먹여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어마어마한 처방약을 받아 들고, 말 못하는 고양이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그 가슴을 쓸어내리기 위한 가격은 517,000원. 누가 그랬던가. 가슴으로 낳아 통장으로 키우는 게 고양이라고.


"네가 할머니네 가라고 해서 그런 거다."

일요일 저녁의 이 소동과 사연을 들은 엄마의 진료 결과는 이거였다.

동물이라도 어디 보낸다는 소리 하는 거 아니다. 다 알아들어. 레고가 네가 하는 말 듣고 속상해서 병 난 거야.


오랜 시간 개와 고양이를 키워 오신 엄마의 진단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 그 이유일 수밖에 없는 것이, 먹고 놀고 자고 하는 것이 모두 평소와 같았다가 내가 그 말을 하기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소화불량이 찾아왔으니까. 레고가 그 말이 너무 싫어서 병이 난 게 맞는 것만 같았다.



"집사야, 난 그 말이 참 싫었어. 그래서 배가 좀 아팠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런 말 하지 마. 대신 방학했으니까 할머니네서 재미있게 놀다 올게. 그동안 집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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