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무심한 언어들 7
나의 첫 번째 직업 이야기, 교사
2003년 교직을 시작하여 어느덧 24년째 해를 거듭하고 있다. 처음 중학교에 발령을 받고 기대와 많이 다른 학교 현실에 어리둥절했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잡무에 놀랐고, 정작 나도 페스탈로치가 아니면서 생각만큼 아이들이 천사가 아니어서 놀랐다. 한 아이의 1년 간의 학교생활을 오롯이 담아 이를 바탕으로 한 학년을 올린다는 것은 정말 많은 서류 기록과 검토, 숱한 손길이 필요한 일이었고, 아이들은 많이 거칠었다. 그리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풋내기 신규 교사인 나는 서툴렀다.
선배 교사들이 말하길, 3년 안에 도망치지 않으면 30년을 일하게 되는 곳이 교직이랬다. IMF의 여파로 어렵게 사범대학에 진학하고, 수십대일의 취업난을 뚫고 들어온 교직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뭔가 속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과 다른 학교의 현실에 선배들의 그 말을 떠올리며 이 길이 과연 내 길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1정 연수 이수 자격을 부여받는다.
교직에 들어와 3년이 지나면 교사들은 180여 시간의 살인적인 시수의 대면 연수와 살 떨리는 시험을 치르고 이른바 2급 정교사에서 1급 정교사로 올라서게 된다. (요즘은 이 이수 시간이 많이 줄었고 평가 방식도 pass/fail로 바뀌었다.) 사회적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없고, 체감하기로는 월급 1호봉이 올라간다는 것(?) 정도였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1급 정교사가 되고, 보직 교사를 맡고 하다 보면 어느새 20년 이상 경력의 교사가 된다. 그리고 때론 나처럼 교육전문직으로 길을 바꿔 교육청에 근무하게 되기도 한다.
나의 두 번째 직업 이야기, 장학사
2025년, 나는 다시 풋내기가 되었다. 오랜 꿈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길은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이끌었고 그렇게 교육청에 근무하는 신규 장학사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베테랑 장학사들이 모인 이 과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어 눈앞이 캄캄했다.
한 가지 일을 20년간 하다가 나이 마흔 중반에 초짜가 되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어떤 준비의 시간도 없이 8월 31일까지 교사였다가 9월 1일부터 장학사를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렇게 유연하게 정체성을 바꿀 만큼의 넉살도 내겐 없었다.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영화처럼 나 혼자만 등장인물도 파악이 되지 않아 눈치만 본다. 줄거리도 모르겠고, 코믹인지 다큐인지 아 혹은 호러인지 장르도 헷갈린다.
시쳇말로 '뚝딱거렸다.'
아직 소회를 정리할 만큼의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도 어느새 5개월이 지나고 있으니 시간은 그야말로 마법 같기만 하다.
학교생활기록부, 잘 아시죠?
나는 학교생활기록부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세 개씩 갖고 있는 학교생활기록부는 [초중등교육법 및 시행규칙]에 따라 작성 및 관리되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와 학교생활을 기록하는 공식 문서로 학생의 개별적 성장 과정을 담은 종합적 성장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인적 및 학적 사항에서부터 출결, 수상경력, 교과활동, 독서활동, 진로 등 학생의 다양한 학교 활동이 주요 기재 항목이다.
한때 학창 시절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열람하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다. 나때만 해도 두껍고 빳빳한 상장 용지 같은 종이에 또박또박 손글씨로 수우미양가 같은 기록들을 적으시던 모습이 기억나는데(그땐 그래서 글씨만 잘 써도 '선생님 해라'는 말을 듣곤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라고 하는 명칭으로 전면 전산화되었다.
법이 있어도 그 법을 해석하는 변호사가 필요하듯, 법령과 시행규칙에 의거하여 기록하면 될 것 같은 학교생활기록부도 다양한 해석의 차이와 예외 사항이 존재한다. 내가 있는 지역만 해도 2025년 기준 고등학생의 수는 4만 명에 가깝다. 이곳에 앉아 학교, 학생, 학부모로부터 오는 문의와 민원 전화를 받다 보면 조금 과장하여 말해 4만 개의 케이스가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만큼 법령에 대한 해석이 필요한 다양한 사례가 존재하여 팔자에도 없을 법령을 끼고 '띠리리리' 전화에 긴장하는, 여지없는 초짜 신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개근', 뭣이 중헌디
그중 출결은 학생들의 학교생활의 출발점이자 가장 근본이 되는 기록이다. 과거에는 특히 학생의 책임감, 성실성, 학습 태도 등을 보여 주는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기도 했다. 우리 엄마만 해도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라'는 입장을 고수하시는 강인한 K-학부모였기에 나도 학년말에 주어지는 개근상에 몹시 매달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요즘의 상황은 다소 달라졌다.
‘개근'이 예전만큼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성실성과 책임감 등을 보여 주는 지표가 '개근'이었지만, 지금은 창의성, 자기 주도성 등 다양한 역량이 더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질병이나 심리적 어려움, 다양한 체험학습 상황 등으로 인해 결석이 단순히 불성실함으로 해석되지 않고 정당한 사유에 따른 결석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출석 강요보다는 학생의 건강이나 개별 상황에 대한 권리를 더욱 존중하는 분위기가 강화되면서 개근 자체가 절대적 가치로 여겨지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은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학습이 보편화되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오죽하면 'ㄱ ㅐㄱㅡㄴ ㄱ ㅓ ㅈ ㅣ'라는 혐오 표현까지 생겨나는 지경이다.
출석인정결석은 출석인가, 결석인가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개근'의 가치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이 아직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 편에서는 '요즘 개근상이 대수인가'라고 하는가 하면, 한 편에서는 '그래도 학생이 학교를 성실히 가야지' 한다. 그래도 결석은, 왠지 싫은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개근이 여전히 성실성을 보여 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오늘날 학생의 건강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환경 속에서 그 절대적 가치가 줄어들었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이러한 과도기가 만들어낸,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말이 바로 '출석인정결석'이다. 학부모라면 당연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개근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면서 결석은 또 싫은 것이다. 이왕이면 우리 아이의 상황이 결석이면서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출석인정결석'이기를 바라는 학부모의 민원은 상상 외로 엄청나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있는 출석인정결석의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아도 그 혼란이 이해된다.
학생이 아파 학교에 오지 못하면 질병 결석이지만,
여학생의 생리통은 월 1회에 한해 출석인정이 된다.
선생님에게 말 안 하고 놀러 가면 미인정 결석이지만, 학부모와 동행하는 사전 신청서를 낸 현장체험학습은 출석인정이 된다.
감기에 걸려 학교에 못 나오면 질병결석이지만
독감 같은 전염병은 출석인정이다.
비교적 판단이 명확하고 사회적으로도 수용 가능한 위 상황들에 준해, 우리 아이의 결석도 '출석인정결석'처리해 달라!!!!!! 는 민원이 수시로 접수된다. 다음의 상황은 과연 출석인정결석일까?
- 사례 1(학부모)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 '학교에 가고 싶은데도' 못 가고 있는데 이게 왜 출석인정결석 처리가 안 되나.
- 사례 2 (학생)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미국에 있는 이모네 집에 가서 지내며 수업을 들을 예정이다. 정식 어학연수 기관이고, 내 꿈을 위한 도전인데, 왜 이게 미인정결석이 되나.
- 사례 3 (교사) 학생이 툭하면 병원에 가서 코로나 19 검사를 받고 있다. 무증상 코로나도 있다며 조퇴를 요구한다. 결석한 날은 다음 날 코로나 검사를 받은 진료 확인서를 갖고 와서 출석인정처리를 해 달라고 난리를 친다. 당연히 음성인 결과지이다. 벌써 이번 달 들어 여섯 번째다. 이 학생은 코로나 19 검진을 위한 PCR 검사, 신속항원검사 등으로 학생이 결석하면 출석인정결석 처리되는 것을 악용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도 계속 출석인정결석처리해줘야 하나.
출석인정결석은 어디까지 확대될까
최근 '슈가'라는 영화가 개봉했다고 들었다. 1형 당뇨 아들을 위해 해외에서 연속혈당측정기를 들여오기 위한 워킹맘의 고군분투를 다룬 영화다. 이 1형 당뇨 환우회는 그간 교육부에 1형 당뇨 학생들이 정기검진으로 학교에 결석할 경우 이를 단순 질병결석이 아니라 출석인정결석으로 처리해 달라고 꾸준히 요구해 왔다. 교육부는 질병으로 인한 결석이 상급 학교 진학에 감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이를 점수화하지 않음을 계속적으로 안내하고 있으나 환우회의 입장은 다른 것 같다. 아이들이 결석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검진을 꺼리는 현실이 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석은 학습 태만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점 등이 그 밑에 깔려 있는 듯하다.
좋은 마음으로 이를 출석인정결석처리하도록 법령을 개선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수많은 다른 희귀성 난치질환을 가진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와 같은 출석인정결석, 학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달라져가는 시선을 담고 있는 뜨거운 단어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