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무심한 언어들 6
우리 동네 이야기
나는 도심 주거지 한복판의 아파트 12층에 살고 있다. 이 지역에서 두세 번째로 큰 주거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그래서 언제나 북적대면서도 주거 중심 지역의 특성상 요란함이나 시끄러움과는 거리가 먼, 그럭저럭 살기 좋은 아파트 동네다.
늦은 밤 혹은 새벽, 잠이 오지 않거나 잠에서 깨어 상념깨나 젖은 사람인 듯 창문 밖을 내다보면 시야에 들어오는 많은 가게들이 이제는 익숙하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부지런하게 문을 열고 가장 늦게까지 불을 켜 두는 곳은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한때 저런 프랜차이즈 하나 갖고 있다면 참 좋겠지 싶기도 했으나 이곳에서 그 가게의 오픈과 클로징을 지켜보면서 그 생각을 거두게 되었다. 한국어에 매우 능통한 외국인 청년에 튀겨주는 옛날치킨집은 작지만 오가는 손님이 많은 이 동네의 명물이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은은한 노란 불빛이 마음에 들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카페인 충족이 되는 듯한 카페는 어쩐지 문을 닫는 시각이 점점 빨라져서 걱정을 사서 하는 나의 오조 오억 번째 걱정을 사고 있다.
그러던 어느 새벽 내려다본 바깥은 낮 동안의 북적거림을 뒤로한 채 짙은 어두움 속에 숨 고르기를 하며 깊은 숙면에 잠긴 듯했다. 언제나 차들이 지나가는 8차선 도로조차 휑하니 비어 있었고 그래도 제 일을 다 하겠다는 신호등만 초록불과 빨간불을 번갈아 띄우며 깊은 밤의 고요를 지켜주고 있었다.
무얼 더 찾고 싶은 건지 모르게 시선을 조금 오른쪽으로 내리니, 그 깊은 시간에도 환한 불을 켜주고 있는 곳이 하나 있었다.
도시의 밤을 지키는, 나의 편의점 이야기
그곳은 편의점이었다. 어느 동네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도시의 붙박이 풍경이 되어버린 편의점, 늦은 시간 귀가하며 조금 으슥한 기분을 느끼다가도 환하게 켜진 불빛을 보면 왠지 모를 안도감과 위로를 느끼게 하는 그곳. 오늘도 그곳은 도시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1999년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고 밀레니엄 시대를 맞는 혼란과 기대가 뒤섞여 있던 그 시기에 나는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같은 동네 출신이면서 막상 과에서는 서먹서먹하던 한 남자 동기가 '너 참 그 동네 살지? 나 거기서 밤에 아르바이트하는데.'라고 말을 걸어왔을 때, LOWSON에서 세븐 일레븐으로 바뀐 동네 어귀의 편의점이 단박에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그곳은 우리 동네 유일한 편의점이었다. 그 아이는 '마침 아침에 일할 사람 구하고 있거든.'이라고 말했고 나는 묘한 설렘과 함께 주저 없이 하겠노라 답했다.
나의 근무 시간은 아침 7시부터 낮 12시.
첫날 조금 일찍 편의점에 도착하니 나를 소개한 동기는 새벽일의 고단함과 졸음이 섞인 표정으로 출입문 유리를 묵묵히 닦고 있었다. 붉은 점 몇 개가 튄 듯 보였다. 새벽에 취객들끼리 싸움이 나서 경찰이 왔다 갔고, 그 흔적을 지우는 중이라고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뭐 대단한 인사말이나 질문도 없이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 번도 구매해 본 적 없는 온갖 물건들이 편의점 구석구석을 차곡차곡 채우고 있었기에 그것들의 위치를 외우고 있어야 했고, 금전함 관리법, 바코드 결재 법, 가끔 본사로부터 오는 확인 전화를 잘 응대하는 법 등을 정신없이 배웠다.
"어서 오세요!"
첫 사회생활이었던 아르바이트생의 첫 난관이 무엇이었냐면, 바로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이었다.
그 말이 그렇게도 입에 붙질 않았다. 내가 편의점에 갈 때는 들었는지조차 몰랐을 그 무심한 말이 너무 어색해서, 입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어서, 오, 세요.'라고 말을 뱉지 못하고 삼키는 나를 보고 동기는 황당해했던 것 같다. 야, 너 그 말 크게 해야 해, 가끔 사장님이 확인하러 나오실 때 있는데 인사 크게 안 하면 안 돼.
그렇게 어색하게 시작한 편의점도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느새 나만의 작은 공간이 되었다. 어서 오세요, 인사도 크게 할 수 있었고, 본사에서 오는 전화도 '감사합니다. 코리아세븐 OOO지점 아르바이트생 OOO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말도 언제 어려워했냐는 듯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일이 손에 익으면서 서서히 오가는 손님들을 관찰할 여유도 생겼고 흥미로운 일도 많았다. 7시를 넘기는 출근 시간에는 직장인과 대학생이 가장 많이 찾아오고, 그 시간이 지나면 어르신들이 많이 찾았다. 요즘처럼 중고등학생이 편의점을 즐겨 찾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 번은 부탄가스를 찾는 할아버지께, 그 물건이 대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저희 편의점은 그런 거 안 파는데요.'라고 했다가 할아버지가 직접 찾아서 내 턱 밑에 들이대던 일이 아직도 기억나는 거 보면 유능하지 못했던 초반의 기억이 꽤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새벽 추위에도 맨발에 샌들을 신고 봉지라면 두어 개를 자주 사 가던 두 남매, 아주 느리고 더딘 동작으로 고향만두를 데워 먹으며 창밖을 멍하니 보던 군인, ‘이런 데서 일할 관상은 아닌데 아르바이트해요?’ 하며 내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던 아주머니.
어느 한적한 토요일 아침, 계산 후 지갑을 놓고 나가버린 한 등산객 아저씨를 쫓아가 버스에 한 발을 올린 그분께 ‘여기 지갑이요!’ 하고 외쳤다. 허둥지둥 지갑을 받는 동시에 버스는 아저씨를 태우고 떠나갔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아저씨께서 ‘학생, 지난주에 정말 고마웠어요.’라는 말과 함께 블랙야크 등산 모자 하나를 내미셨다. 그때만 해도 블랙야크는 대학생의 브랜드가 아니었고 모양도 투박했다. 그 모자를 쓰고 외출을 한 기억은 아무래도 없지만 다시 편의점을 찾아 보답하려 하신 아저씨의 마음을 정말 고맙고 뿌듯하게 받았었다. 이른바 진상 손님도 있었을 텐데 왠지 편의점에 대한 내 기억은 그래도 따뜻했다.
대학생활로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 어느 날 마주한 편의점은 뜬금없는 소아과가 들어앉아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면 한쪽 구석에 있던 좁은 방에서 늘 주식 차트를 보고 있던 사장님이 떠올랐다. 그 시절 편의점 하나가 사라진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을 텐데, 마음이 허전했다.
오늘도 편의점을 다녀왔다. 편의점은 나의 후각과 시각, 청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딸랑거리는 종소리,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와 함께 커피머신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원두의 향, 누군가 갓 데워간 삼각김밥의 따뜻한 김 냄새, 사탕과 초콜릿 봉지에서 새어 나오는 달콤한 기운, 비누와 샴푸의 은은한 향이 동시에 코끝을 간지럽히며 25년 전 그곳으로 나를 데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