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의 무심한 언어들 5
어떤 죽음
죽음은 잊힘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기억일지 모른다. 어떤 죽음은 잊히기를 거부한다. 기억의 가장 어두운 방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가끔씩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다가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종종 그것들을 꺼내 내 브런치에 남겼다.
'올해 우리 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고 김OO 동문께서 천국 입성하셨기에...'로 시작하는 부고 안내 문자 속 젊은 그녀의 이름은, 한 번 제대로 스쳐간 적 없는 인연임에도 내 안에서 낯설게 반복되었다.
어느 흔하디 흔한 출근길, 회백색 도로에 검은색 자욱을 남긴, 단번에 끊어지지 않은 목숨이 꼬리 끝에만 남아 바닥을 치며 생명이 닳아가던 길고양이의 모습은 기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나를 이끌었다.
또래 여자아이들보다 유난히 키가 크고 박력이 넘쳤던, 짧은 커트 머리가 매력이던, 태권도 사범이 꿈이던, 고작 열네 살 아이의 이름 앞에 붙었던 고(故)라는 한자는 낯설다 못해 기이했다.
'참사'라는 단어 하나로 179명의 희생을, 내가 느끼는 고통스러움, 숨 막힘, 힘겨움, 허망함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죽음을 표현하는 그 명사를 거부하고 싶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애도의 말은 언제나 의례적이고 공허하다. 그 이상 다른 표현은 없다. 어쩌면 언어가 필요 없는 맥락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명복'은 불교적 색채가 담긴 단어임에도 종교를 넘어선 추모의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애도의 마음은 훨씬 깊고 복잡하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은 몇 마디의 말조차 삼켜버린 침묵이 더 합당하다. 그렇게 언어가 닿지 못하는 자리에, 우리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와 같은 정형화된 문장을 건넨다.
어쩔 수 없이라도 죽음을 언급해야 하는 순간, 우리는 언어의 무력함을 깨닫는다. 처음으로 내 친구의 부친상에 조문객으로 문상을 가게 된 고등학생 시절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조문의 예도 잘 모르거니와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자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린 문상객으로서의 나의 존재는 어색했고, 나를 보며 짧게 웃는 어린 상주의 모습은 먹먹했다. 그때 나는 무수한 검은 옷들, 낮은 울음소리, 친구의 표정, 낯설던 냄새까지도 기억하지만 내가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후로도 몇 번의 장례식을 경험하면서 나는 늘 같은 고민을 반복했다. 죽음이라는 결말은 모두 같았지만 남은 자들이 나누어야 하는 언어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어떤 애도의 언어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떤 애도의 표현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누구에게나 건넬 수 있는 최소한의 언어와 그 언어를 감싸는 침묵만이 애도의 가장 진실한 언어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