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일까 부담일까. "아무거나요."

우리 곁의 무심한 언어들 8

by 구름 수집가
선택, 선택, 선택...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라는 출처 불분명한 명언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기로에 언제나 놓여 있다. 어쩌면 모든 행위는 다 선택의 결과이니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모든 것은 선택이다. 짜장면과 짬뽕 같은 일상의 가벼운 선택에서부터 급격히 하락하는 코인 시장에 물타기를 할지 말지 같은 심각한 선택도 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것도 사소함에서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출근 전 어떤 옷을 입을까 같은 일상의 선택도 내겐 좀처럼 쉽지가 않다.


일단 그날의 날씨, 난 추위와 더위에 민감하여 반드시 최고/최저 기온을 확인한다. 비라도 오면 화이트 계열은 입지 않는다.

또한 그날의 일정, 회의라도 있을 땐 반드시 격식을 갖춘 옷차림을 한다. 예정된 상부 보고가 없는 날엔 가벼운 착장을 즐긴다.

가끔은 이러한 선택과 준비가 골치 아파 언제나 청바지에 검은색 폴라티, 운동화를 신으며 선택의 정신적 에너지를 아끼고자 했다던 한 천재 CEO의 선택에 수긍이 간다.

배려하는 말일까, 부담을 주는 말일까


아무리 되짚어봐도 정말 특별히 가리는 음식도 없고 모든 걸 다 잘 먹는 나는 '아무거나요'를 자주 외치는 편이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말이 상대를 배려하는 말일지, 부담을 주는 말일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특히 직장의 점심시간이나 모임에서 ‘아무거나요’라는 말을 들으면 결정의 부담이 나에게 전적으로 넘어온다는 느낌이 들면서 과연 진짜 다 괜찮다는 것인지, 아니면 선호가 있는데 말하지 않는 것인지까지 생각하게 될 때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올해 전직을 하면서 다양한 자리에 불려나가 밥을 먹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무엇을 먹고 싶냐, 나를 배려하기 위해 자주 듣는 말이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인지라 나의 기호를 대놓고 드러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아무래도 메뉴를 콕 집으면 상대가 못 먹거나 선호하지 않는 음식일까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있다.


그래서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무언가를 선택하게 될 때 나는 ‘아무거나요’를 외치며 부담을 덜되, 조금은 다른 말들을 덧붙여 본다.


첫째, 상대의 선택권을 좁혀준다.

'저는 아무거나 괜찮은데, 오늘은 한식보다는 분식이 더 땡겨서요. 국수, 스파게티, 짜장면 다 좋네요.'


둘째, 우선순위나 꼭 피하고 싶은 것에 대한 것만큼은 분명히 한다.

'아무거나 괜찮지만, 매운 건 좀 잘 못 먹어요.'


셋째, 상대에 대한 신뢰감을 추가한다.

'아무거나 괜찮아요. 저는 특별히 가리는 게 없어서 당신이 고르는 걸 먹어 보고 싶어요.'


'아무거나요'라는 말이 자체의 유연함은 살리되 상대방이 선택하기 쉽게 작은 가이드라인을 던져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아무거나요'가 어떤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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