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 담지는 못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 곁의 무심한 언어들 3

by 구름 수집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말부터 연초까지 익숙하게 들리는 인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민원인과 사무적인 통화를 나누다가도 잊지 않고 이 말을 덧붙이면 전화기 너머의 닫힌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을 받는다. 복을 빌어주는 덕담에 풀리지 않을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복이란 한자는 원래 ‘시(示)’와 ‘복(畐)’의 회의문자인데 ‘시’는 하늘이 사람에게 내려서 나타낸다는 ‘신의(神意)’를 뜻하는 상형문자이고, ‘복’은 가득 찬 단지를 그린 상형문자라고 하니 하늘(신)이 내려준 풍요와 행운을 상징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렇게 보면 ‘복(福)’이라는 단어는 얼핏 매우 예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호감이 가는 생김새에 대해 ‘복스럽게 생겼다’라고도 하고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복스럽게 먹는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남의 고생스러운 봉사나 헌신에 ‘복이 돌아올 것’이라고 치하하기도 하며, 치아 건강이 '오복' 중 하나라는 말은 치약 광고만은 아니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 쓰게 된 단어인 ‘복지’, ‘복권’도 이 ‘복(福)’자를 쓰니 ‘복(福)’이라는 단어가 아주 옛것의 개념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또한 나라마다 새해 인사의 포인트는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우리나라처럼 상대의 안녕을 비는 보다 명확한 의지를 전달하는 인사말이 있는가 하면, 영어권의 'Happy new year!'처럼 그저 새해 자체를 축하하는 마음을 담은 인사말도 많다. 우리와 같은 말을 쓰는 북한도 ‘새해를 축하합니다.’라고 인사한다고 하는데, ‘복(福)’이라는 것을 미신 혹은 종교적 산물로 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복(福)’을 넣어 덕담을 나누는 우리도 초월적 존재의 산물이나 종교적 실천과 연결 짓는다기보다 사회적 덕담 혹은 문화적 관습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가끔은 언어가 마음을 다 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본 반갑고 정다운 선배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진심을 다해 전해도 뒷맛이 조금은 아쉽다.


조선시대에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확정하는 발화행위로서의 좀 더 특별한 새해 인사말이 있었다. 조선 후기 한글 문헌 연구에 따르면 왕과 신하 사이의 문안에서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경사가 크다’와 같은 표현이 실제 합격 이전에 덕담으로 쓰인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말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언어적 주술에서 더 나아가 상대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며 공동체적 연대감을 강화할 수 있는 기능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숙종 임금은 병상에 누운 고모 숙휘공주에게 보낸 새해 문안 편지에서 ‘오래 묵은병이 다 나으셨다니 기쁩니다.’라는 인사를 보냈다. 조선시대에 새해 덕담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하는 언어적 관습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우리의 담화에는 이처럼 미래의 일을 이미 일어난 과거의 일처럼 표현하는 형태가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갑자기 부여된 업무가 생겼을 때 '오늘 잠은 다 잤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렇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상대방에게 이 ‘복(福)’을 좀 더 풍성하게 그려주는 인사말은 어떨까 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그를 나의 울타리 안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인사이기도 하다.


선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둘째 대학 입시 때문에 신경 많이 쓰실 텐데 선배님 건강도 잘 챙기세요.
선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업무가 많은 이곳에서 근무하신 지 벌써 4년째이니 올해는 더 편안한 곳으로 발령 나시길 바랄게요.

복이 단순히 운이 아니라 삶의 행복과 풍요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단어라면 삶과 현실에 대한 긍정을 바탕으로 한 균형과 조화를 빌어주는 것으로 확장하면 어떨까. 언어에 힘이 있다고 믿는 우리 사회에서 새해 덕담은 새해인사라는 특별한 순간에 서로에게 빌어 줄 수 있는 연대감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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