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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수집가 Oct 02. 2020

좋은 글쓰기란 무엇인가 1

- 좋은 글쓰기에 대한 나쁘지 않은 조언

어느덧 살아온 인생의 햇수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글쓰기'라는 행위와 그 결과물을 좋아하며 살아온 햇수가 나이의 절반을 넘는 것 같다.

이런 주제의 글을 한번 써보기 위해 그렇게 어림셈을 하고 나니 문득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이 글쓰기가 한결 더, 정겹다. 그 어떤 행위보다도 더 나 자신을 잘 알게 해 주고 그 어떤 소유물보다도 더 애틋하게 간직하고 싶도록 만들어 주는 일. 예컨대 이런저런 핑계로 시작을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막상 시작했을 때 유일하게 '역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바로 글쓰기이다(언제나 정답인 치느님조차도 먹기 시작한지 중반이 지나면 내가 왜 이걸 이리 꾸역꾸역 먹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보통 어떤 극단적 상황과 감정에 휩싸여 이를 쏟아버릴 무언가를 찾을 때 나는 글쓰기를 떠올린다. 내가 감정을 정리하며 마음을 터놓고 싶은 장소는 노트북 속 흰 화면이다. 이때 나는 담담하긴 하지만  내밀한 복수를 꿈꾸 호주머니 속 날카롭게 다듬어진 칼날의 끝을 천천히 매만지는 사람의 마음이 된다. 그리고 두서없이 첫 문장을 쓰는 행위만 떠올려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곤 한다.


내게 글쓰기가 그런 존재였음을 느낀 것은 불과 2,3년도 되지 않았다. 계기는 한 질문이었다.


너는 어떤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해?
무엇이 네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야?
무엇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같아?

마흔을 눈앞에 두고 나는 약간의 혼란과 의무감으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내가 행복해하는 일, 좋아하는 일, 이왕이면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인생의 후반부를 생기있게 보내고 싶었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가져온다. 그 평범한 질문은 내게 늦었다면 너무 늦은 질문이기도 했지만, 어떤 면에서 지금이라도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어서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여러 상념의 길을 돌아 결국 '글쓰기'였고 그 결론은 나를 좀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동안 나는 생각이 말을 가로막을 때 펜을 들었고, 말이 생각을 앞지를 때 자판을 두드렸다. 그랬으면서 글 쓰는 게 행복인 줄 몰랐다. 좀 그럴듯하게 말해서, 글쓰기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나에게 너무나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그걸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몰랐다. 그래서 좀 정말이지, 얼떨떨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주변에 공표했다. 나는 글을 쓸 거라고.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책을 내는 작가가 꼭 되겠다고 장담했다. 그 말을 누가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찌보면 혼잣말의 성격을 띤 대화였을 것이다. 다만 꼭 그렇게 되고 싶어서, 생각함보다 말함과 행동함이 너무 늦고 부족한 나를 알았기에 이번만큼은 말을 앞세워 그 말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싶었다.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言]이 가장 무섭고, 책이 가장 무겁다. 요즘처럼 책을 내는 일의 문턱이 낮아지고 작가가 너무 흔한 타이틀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말[馬]의 엉덩이를 대차게 때려 저 멀리 먼저 보내는 심정으로 작가가 되겠다고 저질러버렸다. 그까짓 게 뭐 대단한 호언장담이냐고 하겠지만, 내겐 정말 그랬다(평소의 나는 인쇄소에 최종 원고를 보내고 '나 사실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라고 말할 인간형이다.). 그러면 그 말이 무섭고 무거워서라도 느리고 게으른 내가 뭔가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 이후로 몹시 마음이 울적하다. 떠나보낸 말이 방향을 잃고 두리번거리고 있을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가장 좋은 글쓰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나쁘지 않은 조언을 목적으로 시작한 글이 여기까지 와 버렸다. 내게 글쓰기가 이렇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동굴의 입구에서 맴돌며 안을 기웃거리다 다시 돌아 나오는 일이라면, 글을 쓰는 것은 나 홀로 동굴의 어둠에 이끌려 홀린 듯 걸어 들어가 그 벽 끝에 가만히 손바닥을 대어 보고 돌아 나오는 일이다. 잠시 글을 맺고 본론은 다음 글로 넘어가 봐야겠다. 그러나 메시지는 분명히 전달되지 않았을까 기대한다. 좋은 글을 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그리고 글쓰기를 정말 좋아해야 한다는 것. 배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연장을 손에 쥐게 하기보다는 바다를 먼저 사랑하게 하라는 위대한 소설가의 조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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