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임신 후, 회사의 복귀가 어려워지자 많은 방황을 했다. 임산부가 우울한 감정을 많이 느끼면 태교에 좋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극복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주말에는 밖에 나가 제주의 자연을 느끼며 산책을 했고, 평일에는 첫째를 돌보며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보니 가슴깊이 묻어 두었던 작가의 꿈이 되살아났다.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임신과 출산으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나의 인생이 살아나는 느낌이랄까.
임신했을 때 다녔던 제주를 책으로 담아 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썼다. 그런데 도무지 어떻게 이런 글 조각들이 책이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지 않고 어떻게 삶이 달라지길 원하는가?” 어떤 책에서 이런 문구를 보고 아차 싶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 끄적끄적 하고 있지만 내 모든 것을 내 걸지는 않는구나. “되고자 하는 곳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 이 문구가 뇌리에 박혔다, 작가가 되기 위해 글쓰기부터 다시 배웠다.그때의 기분이나 일상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저 나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고 작가가 된 후에도 SNS활동을 열심히 해야 했기에 한번 씩 일상의 사진들을 올렸다.SNS사진을 보고 한 친구가 연락이 왔다.
“너 요즘 뭐 준비하니?”
“응. 책을 쓰고 있어. 그리고 1인기업가도 준비하고 있고.”
“이젠 돈 안 벌고 글 쓰는구나. 1인기업은 어떤 걸로 할거야? ”
“돈 안 버는 게 아니라 임신하고 첫째가 아직 어려 밖에 나가는 게 힘들어. 글이라도 써 야지. 계약이 되면 그때 말해줄게. 1인기업 준비하는 것도 나중에 조금 확정이 되면 알려 줄게”
“……”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친구의 침묵 속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나도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책이 계약이 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섣불리 말하기에 조심스러웠다.
“나는 너처럼 남편이나 시댁 덕으로 사는 여자가 제일 싫어. 나는 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거야!”
전화를 끊고 이런 문자가 왔다. 친구와 오해를 풀어 보려고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문자로 나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녀는 그 이후로 어떤 답변도 없었다. 그 흔한 안부 연락조차 끊겼다.
일을 그만둔 친구가, 무슨 돈으로 서울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것저것 배우러 다닐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아마도 친구는 내가 결혼을 잘해 남편이나 시댁의 지원을 받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사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SNS만 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일도 그만두고 자기가 배우고 싶은 거 다 배우러 다닌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을 그만두었으니 돈이 없을 테고 돈은 남편이 지원해 주는 구나 충분히 오해할 수도 있겠지.
사람들은 보이는 게 전부라고 믿기 마련이다. 그 보여지는 것들 이면에 어떤 노력을 기울었는지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결혼 전, 나는 좋은 남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만나는 남자마다 가치관이 잘 맞지 않았다. 나쁜 남자를 잘 못 만나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때 내린 결론은 ’내가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경제력이 있어야 겠다. 그리고 남편 능력과 상관없이 결혼 후 육아로 경력단절이 되더라도 내가 다시 사회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종잣돈을 마련해야겠다‘ 였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결혼 전 돈을 많이 모아두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사실, 항공사에 오래 근무를 하다보면 많은 유혹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명품유혹이다. 항공사라는 특성상 부유층을 많이 봐야 됐다. 그래서 좋은 물건, 좋은 옷들에 대한 식견이 생긴다. 이쪽 분야에 있는 많은 분들이 허영심에 빠지기도 하고 명품 백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분들도 많은 이유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를 지켜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명품백 드는 사람보다는 내가 명품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쉬는 날이면 0.1%라도 금리를 더 주는 은행을 찾아 다녔다. 월급을 효율적으로 모으고자 주식이나 ELS 상품도 공부하고 투자하며 한푼 두푼 돈을 모았다. 내 돈으로 5만원 넘는 옷은 거의 사 본 적도 없을 만큼 절약했다. 월세 10만원이라도 줄이려고 안 좋은 동네에 좋지 않은 환경의 원룸에서 몇 년간 살기도 했으니까. 내가 유일하게 투자했던 돈은 여행경비와 자기계발비였다.
참 지금 생각하면 가장 이뻐야 할 20대에 너무 궁색했나 싶기도 하다. 그때는 200만원 내외의 한정된 월급으로 제 생활을 유지하고 종자돈을 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결혼 전까지 몇 년을 모았다.
사실 힘들었다. 남편 잘 만나는 친구들 보면 편하게 명품 백 들고 다니면서 부자집 남자 만나던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시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소신을 지켰다.
그렇게 월급대비 돈을 꽤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결혼 경비며 추후 경력단절이 되었을 때 나에게 투자할 종자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소중한 돈으로 직장을 그만두고도 계속 저에게 투자할 수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배우는데 드는 돈은 남편의 돈을 빌리지 않아도 됐다 . 아마도 그것이 내가 남편 눈치 안 보고 나답게 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믿는다. 특히 요즘처럼 SNS가 발달한 시대는 일명 ‘있어빌리티“를 추구한다. 멋진 차를 타고 멋진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일명 럭셔리 인플루언서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다. 자꾸 그런 것을 보다보면 그 사람이 멋져 보이고, 나도 따라하고 싶어진다.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함에 자괴감도 들기도 한다.
사람은 각기 다른 속도로 인생을 살아간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남이 갖고 있으면 괜히 질 투가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만큼 투자(시간, 경제, 노력)를 많이 했을 것이다.
보이는 것만 믿으면 시선이 자기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향하게 된다.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과거의 노력을 본다면 배우게 되고 발전할 수 있다. 그래야 시선이 나에게 향하게 되고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잘 나 보이는 그들의 보이는 모습만 부러워하지 말고, 보이지 않았던 그들의 노력을 생각해 보며 다시 나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