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육아만 하다가 시간이 끝나 버릴 것만 같았다. 뭐 하나 변변하게 이룬 것도 없는데 마흔이라는 나이가 가까워 졌다.
결혼도 일도 모든 것이 불안했던 서른 살. 그때 상상하는 마흔 살 이라는 나이는 무언가 안정된 느낌이었다. 아이 둘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나는 한 회사의 어엿한 사장님이 되는 줄 알았다. 벤츠정도는 기본적으로 끌고 다니며 해외 여행은 일녀에 서 너번 다녀 올 줄 알았다. 그때는 그랬다. 내가 상상하는 마흔 살의 모습은.
서른 여덟 살. 초등학생은커녕 나는 두 돌 된 안 된 아이의 엄마였고 세상에 나오지 못한 아이가 아직 내 뱃속에 있었다.
하루하루가 무기력했다. 1년간 육아에만 전념하겠다고 받은 육아 휴직은 어느새 끝이 다가 오고 있었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이대로 회사에 복귀를 해야 하나, 다시 임신을 한 것을 알면 회사에서 뭐라고 할까. 온갖 생각이 나를 뒤 덥혔다.
조금 더 자유로운 일이 하고 싶었다. 나만의 색깔을 찾고 싶었다. 책을 읽고 인터넷 정보를 찾으면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모색했다. 아주 우연하게 그녀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그녀는 작가였다. 자신을 권 작가로 자칭하는 그녀의 블로그에는 그녀가 썼던 책에 대한 이야기와 일상이 소개되어 있었다. 부러웠다. 나와 똑같이 아이들의 엄마였지만 그녀는 내가 갖지 못한 많은 것들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출근하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는 작가였고, 가끔 강연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자유로운 그녀는 임신 중인데도 부동산을 공부하며 자기계발을 하고 있었다.
매일 들어가서 그녀의 블로그를 염탐했다. 그녀에 대해 하나씩 알아갈수록 질투가 났다.
‘이 여자는 나랑 무엇이 다른 걸까?’
왜 똑같이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기 일을 하고 블로그를 할 시간이 있는 걸까? 그녀의 삶, 모든 것이 부러웠다. 그녀는 나보다 똑똑해 보였다. 재력 있는 남편을 만나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사는 것 같아 보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좋아했다. 가장 부러웠던 건 자기 자신을 권작가라고 말하는 그녀의 닉네임이었다.
내 또래처럼 보이는 그녀가 가진 것에 비해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졌다. 나는 하루 종일아이와 함께 육아의 늪에서 허우적 되고 있었고, 점점 내 자신을 잃어갔다.
그녀에 대한 부러움은 나의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애착 육아 3년이라는 족쇄를 차고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착각 속에서 1년을 보내고 있었다.
블로그로 알게 되는 사람들 중에서 무언가 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다 대단해 보였다. 언제 저렇게 성공을 했을까? 그럴수록 내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이제까지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라는 자기 연민이 느껴졌다.
서른여덟 인생을 허투루 살지는 않았다. 누구에게 손가락 받을 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니였다. 크게 이룬 것은 없지만 크게 잃은 것도 없는 인생이었다.
누구나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그 깊이와 성공의 여부는 아직은 알지 못한다. 그녀는 그녀의 삶의 흔적들이 모여 지금의 그녀가 된 것이고, 나는 나의 삶의 흔적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사람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부러워하게 된다.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작가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때는 부러웠지만 나 역시 작가의 삶을 살면서 그녀가 더 이상 부럽지 않았다. 재력 있는 남편도 그녀의 삶도 그저 선망의 대상은 아니었다.
드디어 나의 삶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의 삶에 집중을 하니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삶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인간은 이토록 간사한가. 그녀가 가진 것을 나도 갖고 나니 그녀를 부러워 했던 마음이 사그라졌다. 결국 부러움이란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가진 자를 바라보는 간사한 욕심이 아니던가. 부럽다면 내가 이루면 될 것이고, 아니면 나만의 길을 가면 그만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모든 것은 나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