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늘 불안했다. 보이지 않는 나의 미래가 답답했다. 열심히 직장 생활을 했지만 나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직장 일을 하면서도 또 다른 것을 찾아 헤매기에 바쁜 날들이었다. 당장 3년 뒤 나의 미래를 생각해 봤다. 분명한 건,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털어 놓는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직장일과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야간 대학원이라면 일과 병행하며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박사학위를 따면 내 인생을 달라지지 않을까.3개월가량 시간을 잡고 대학 전공과는 상관없는 전공 공부를 했다. 바로 관광경영학이었다. 3년가량 항공사에서 근무를 했으니 관광경영학을 공부하여 학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지원을 했다.
매주 2번씩 있는 대학원 강의를 들으러 가기 위해 스케줄을 조정하고 편도 10000원이 넘는 택시비도 기꺼이 감수했다.
누구나 처음 하는 일에는 열정이 생기는 법이다. 열정적으로 과제를 수행하고, 시험기간에는 밤을 꼬박새서 공부하고 출근을 하는 일을 병행했다. 고되긴 했지만 참아 낼 만 한 고통이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이뻐 보였는지 과대표로 선출이 되어 교수님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나에게 화가 될 줄은.
나를 유난히도 아껴주시던 교수님이 계셨다. 말끔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교수님이라 평소에도 잘 따랐다.
어느 날, 교수님이 전화가 왔다.
“오늘 학교에 올 껀가?”
“네! 오늘 수업이 있습니다!”
“그럼 올 때 물뿌리개 좀 사와서 내 방 화분에 물을 좀 주게”
“네? 물뿌리개요?”
“응. 화분에 물을 못 줘서 말이지”
“아 네...”
처음에는 교수님이 물을 줄 시간도 없으셔서 나에게 시키나 했다. 그런데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교수님의 사적인 부탁은 줄을 이었다. 마치 내가 비서가 된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대학원에서 대학원생은 을 중에 을이다. 책임교수의 재량에 따라 논문 심사를 받아야 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교수는 막중한 권력을 지닌다. 모든 교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수의 권한을 사적인 영역까지 확장을 시키는 분들이 있다. 교수의 권한이 큰 것을 아는 대학원생은 그의 지시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한국의 대학원이다.
대학원 생활을 하며 공부를 하는 시간보다 교수의 비위를 맞추고 교수가 원하는 것을 헤아려 주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학문을 위한 장소라기 보다는 또다른 사회 생활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은 또 다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대학원에 들어 온 목적도 상실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대학원 생활까지 갑의 비유를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오랜 고민 끝에 대학원 자퇴를 결정했다.
“교수님. 저 자퇴하려고 합니다”
“뭐? 휴학도 아니고 자퇴? 사람이 어쩜 그렇게 경솔한가? 자네를 합격시키기 위해 여기에 오고 싶은 한 사람은 기회를 잃었어!”
자퇴 확인서를 받으러 간 자리에서 담당교수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야단을 맞으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교수님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기회 비용을 뺏아 간 것일 수 도 있었다. 그러나 어렵게 들어간 대학원을 자퇴까지 하게 만든 대학원 문화도 나에게 잘못을 했다.
대학원 자퇴 소식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전하자 보통은 좋지 않은 소리를 했다.
“아니, 끝까지 하지도 못할 것 왜 시작은 했어”
“돈 날리고 시간 날리고 잘 한다”
“그깟 교수 비위하나 못 맞춰서 뭘 하려고 그래?”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일까? 대학원 문화에 적응 못하는 부적응자였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대학원을 자퇴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 어떤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루저’라고 표현했다.
길을 가다보면 잘 못 들어설 때도 있다. 내 안에 장착된 네비게이션도 에러가 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그것을 ‘이유 있는 방황’이라고 칭하고 싶다. 인생의 변곡점 없이 단 한번에 자신의 길을 찾아 갈 수 있단 말인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잘 못 선택한 방황을 그저 조금 여유 있게 관조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바른 길로 가는 시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