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를 낳고 달라진 것이 있다. 아이 말고는 웃을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특히 변화에 상당히 둔감해 진다. 밖에 있는 시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것에 둔하다.
문재인 정권의 정책보다 아기 똥 색깔에 민감했고, 부동산 시장의 침체보다 내일 만들 이유식 재료 없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나는 안 그럴 것 같았지만 아니 나 역시 그랬다.
심지어 봄에 벚꽃이 피면 설레였던 마음도, 청보리가 바람에 나부끼며 흔들거렸던 모습을 찾아 가던 마음도 잊어버렸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나의 어휘 수준도 그에 맞춰 갔다.
“아구 아구 똥 쌌쪄?”
“우리 아기 쿵 했쪄? ”
이런 대화가 주를 이루었다. 남편과 또래 친구들과 나누는 주된 대화의 주제도 육아였다. 남들은 어떤 기저귀를 쓰고, 어떤 육아템이 좋다 하더라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자극은 아이들 열이 38도 이상 넘어가는 것이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세상에 태어나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세계였다. 머리를 못 감는 날도 많았고, 밥은 서서 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렇게 기본적인 일상조차 누리지 못하는 세상. 그게 바로 육아였다. 그러다 보니 가끔 아이를 재우고 내가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에 대한 자아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했다.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이 어디 있을까. 처음 주어지는 엄마역할은 여자로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마저 잊게 만들었다. 신상 립스틱을 바르며 기분 좋아지던 기쁨이라던가, 친구와 3~4시간씩 쇼핑을 하던 일은 사치였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핸드폰 화면 속의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아 진다. 특히 나와 같이 아이 키우는 엄마들.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거나, 아이들 키우면서도 늘씬한 몸매와 화려한 패션스타일을 유지하는 엄마들은 어쩜 다 쿨해 보였다.
육아를 하며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작은 행복은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산책하는 거였다. 동네를 이리저리 다니며 동네 커피숍에 앉아 마시는 커피한잔이 유일한 위로였다.
가끔 동네에 있는 조그마한 옷가게에 들러 새로 나온 신상 옷들을 구경하는 재미 그 정도가 아기엄마가 할 수 있는 기분전환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동네를 돌며 알게 된 조그마한 옷 가게에 들러 아주 화려한 롱치마를 하나 구입했다. 그것도 50% 할인이 된 가격 17000원. 집에 돌아와, 여기저기 옷을 매치하며 한껏 멋을 부려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17000원의 작은 행복이라니! 오늘 하루의 행복이란 아주 가까이 그리고 아주 사소한 곳에 있다는 것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비록 그 롱치마 하나가 주는 행복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지라도 그날, 우울한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면 아주 큰일을 한 셈이니까.
언제부터우리 사회는 ‘행복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SNS는 자신의 행복함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이고, 행복의 키워드를 잡은 책이 잘 팔린다. 그만큼 우리는 행복해 지는 법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내가 오늘 할 일을 잘 마무리 하는 것. 동네 커피숍에서 마실 수 있는 커피 한잔, 친구와 나눌 수 있는 담소. 그리고 지나가는 옷가게에서 세일하는 옷을 살 수 있었던 날. 그런 사소한 행복을 찾는 날이 되기를. 나는 17000원의 옷을 사며 아주 사소한 행복함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