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때 철학과에 다니던 아는 오빠가 있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분이였는데, 어린나이에 버버리 코트를 입고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녔던 모습이 생생하다. 우리가 취업을 위해 토익을 공부할 때조차 그 오빠는 철학 책을 봤다. 그는 인생을 왜 살아야 되는 지에 근본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않고 토익 공부는 필요없다며 취업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인생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듯 했다. 나중에 들은 소식으로는 그는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와 아주 잘 어울리는 직업이다.
살면서 가끔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이 땅에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을 하는 나 자신에게서 대학 때 알았던 그 철학과 오빠가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하루 종일 일에 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끔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일을 하는가? 나는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가? 모두 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었다.
삶의 허들을 힘겹게 넘으며 대학을 가고, 직장을 갔다. 그저 남보다 조금 더 잘 살려고, 아니 남들만큼만 살아가기 위해 달려온 시간들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내 마음 속에는 조금은 특별히, 나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했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은 그저 남과 똑같은 삶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늘 갑갑했다. 한마디로 취업을 이루고 나기 그 다음 꿈이 없던 것이었다.
하루는 퇴근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대학 전공을 살려 꽤나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내 사회생활이나 인생에는 불만족한 삶이었다.
갑자기 버스에서 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하차를 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했던 선배가 생각나 그 언니에게 전화를 하고 상담을 요청했다.
“언니.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남과 똑같이 회사 생활하고 몇 년이 흐른뒤 너무 허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경아.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어. 왜 너만 다르게 살아야 한고 생각해!”
나보다 8년 정도 사회생활을 한 선배였다. 선배가 나에게 던진 답은 큰 위안도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도 없었다. 오히려 더 답답했다. 그 후에도 여러 명의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대부분은 배가 부른 소리한다며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았다.
당시 나는 심각하게 나의 삶과 존재의 이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괴로워했다 .주말에는 타로며 사주 같은 것도 많이 보러 다니며 그 해답을 찾았다.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용하다는 철학관을 소개 받았다. 친구와 함께 가 나의 고민상담을 했다.
“직장 생활에 회의감이 듭니다. 제가 너무 남과 똑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
“자네는 여기 와야 될 사람이 아니네. 누가 이렇게 살라고 해서 들을 사람이 아니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게. 그럼 된 다네”
의외의 답이었다. 철학관에서 하는 이야기치고는 참 신선하다고나 할까. 그는 나에게 어떤 직업이 잘 맞고 어떻게 하면 좋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하게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바로 내가 원하는 답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그 어떤 누구도 너 자신이 원하는 살아라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대학을 가기 위해 욕망을 참으며 공부를 하라고 했고, 취업을 하기 위해 죽어라 토익 공부를 하라고 했다. 근본적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나의 존재 이유를 생각 할 여유가 없었다. 사회가 정해 놓은 길을 따라가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의 꿈은 무엇인지를 스스로 물어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세상이 원하는 대로 나는 대학을 가고 취업도 했다. 그래서 내 할 일을 다 한 건가?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회사 취업의 문을 뚫었을 때, 어떤 누구도 나에게 그 다음 인생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힘겹게 결혼이라는 관문에 통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다음 인생을, 그 다음의 꿈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된 계기다. 마치 인생의 큰 숙제를 풀었으니 이제는 됐다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오랜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그저 내 생각이 흐르는 대로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살고 있는 요즘. 더 이상 괴롭지 않다. 적어도 나의 존재 이유가 궁금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40이 가까워 져서 나의 자아상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회의 통념에 맞춰 살지 않을 것. 나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 것.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앞으로 나답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 각자의 재능과 능력으로 반짝이는 자신이 되도록 돕는 것. 그런 사명감을 찾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