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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희경 Nov 17. 2019

나만의 취향을 알아갈 것

      

“자기 신발 하나 골라봐. 지금 있는 거 버려야 할 것들도 꽤 있어”     


 얼마 전에 남편이 나에게 제대로 된 신발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며 한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신발 하나 사 줄 테니 하나 고르라며 신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내가 그동안 내 신발 한 켤레도 신경 못 쓰며 살았나’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니, 3년간 연이어 아이를 낳다보니 꾸미고 외출하는 것이 어려웠다. 아이를 낳기 전처럼 나를 돋보이게 해 주고 취향에 맞는 옷을 사는 것이 어찌나 어렵던지. 몇 년간 아이를 케어 하기에 좋은 옷과 신발들을 사 모았다. 몇 년 못 입을 옷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가격이 저렴한 것들을 사 모았다. 그러다보니 금방 해지고 제 구실을 잘 못하여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고 보니 긴 육아는 내가 어떤 옷을 좋아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했다. 


 요즘 취향저격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취향저격이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람이나 물건을 뜻한다. 그런데 이런 취향도 돈 앞에서는 무너졌다. 맞벌이를 하다가 육아맘으로 전향하면서 수입이 줄자 나의 개인적 취향도 상황에 맞춰 바뀌었다. 취향에 맞는 커피숍에 가는 횟수보다 가격이 저렴한 동네커피숍으로 취향이 바뀌었다. 핏(fit)이 이쁜 옷보다 싸고 품이 넉넉한 옷을 골랐다. 질 좋은 신발 대신 싼 가격의 신발을 샀다. 어느덧 나는 또렷한 취향도 없고 가격에 내 취향을 맞추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사실, 취향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 같다. 누가 고급스러운 취향을 갖고 싶지 않을까? 상황이 안 되고 여유가 없으니 취향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지나가면서 던진 남편의 한마디가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나의 취향은 어디로 가 버린걸까?  생각해 보면 결혼전  나는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런 취향 때문에 남자 친구와도 오래 가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결혼 전, 후배의 소개로 잠깐 만났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찌들어 있던 남자들만 보다가 박사 과정 중인 그를 처음 봤을 때, 순수한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스마트한 외모가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자기 전공 분야를 이야기 할 때면 아이처럼 신나서 말을 하는 모습도 참 귀여웠다. 걷는 것도 좋아해서 취미로 함께 등산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그런데 그를 만날수록 잘 맞지 않는다는 걸 금세 알았다. 그는 매번 데이트마다 밥을 먹으면서 술을 마셨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어색해서 그런가 했다. 아니, 그는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나는 술을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였다. 데이트 스타일도 공연이나 전시회를 가는 것을 즐겼다.

 처음 몇 번은 만나는 사람이기에 서로의 취향을 인정하고 함께 공유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술도 같이 마셔보고 그가 좋아하는 데이트 취향에 맞추면서 잘 지내보려고 애를 썼다. 만나다 보면 한 두 번은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데이트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공연이나 전시회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런 나의 취향에 그도 맞춰 줄 주 알았다. 그런데 그는 그런 것에는 영 취미가 없었다. 함께 공연을 가면 지루해 했고 약속을 미루었다. 그러다보니 자꾸 불협화음이 나고 데이트로 작은 싸움까지 벌어졌다. 결국 데이트 취향이 맞지 않아 오해가 깊어졌고  짧은 만남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와 헤어지고 늦게야 깨달았다. 취향이란 맞춰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취향까지 맞춰 줄 수 없다는 것을.      

 자기 취향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알아간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어떤 물건에 관심을 갖고, 어떤 경험에 기쁨을 느끼는지는 오직 경험이 그 답을 준다.  

그런데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취향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사실, 나 조차 아이를 낳고 본래의 나의 취향을 잊고 살았으니까.     

 자신을 가장 자기답게 하는 것은 이런 자기 취향을 발견하고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이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자기가 진정 무엇을 즐기고 좋아하는 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들을 한다. 내가 대학교 취업 강의를 갔을 때도 그랬고, 엄마가 되어 만나는 엄마들이 그런 소리를 했다. 자신이 뭘 싫어하는지는 잘 알지만 진정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는 대답을 잘 못 했다.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리고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 그 속에서 삶의 기쁨과 의미를 찾고 또 직업이나 일로도 연결을 잘 시킨다.     

 이런 글을 쓰는 나조차, 한때는 취향이 없어 무채색에 가까운 인생을 몇 년씩 보냈고, 가끔 육아를 하면서 내가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에 대한 여자와 엄마의 정체성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작게라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취향의 것들을 하나씩 해 보면서 나를 다시 찾고 알아가려고 애를 썼다. 지금도 끊임없이 나의 취향을 알아가고 있다.     

한순간에, 그리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다 보면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되고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답게 사는 삶....그런 삶을 위해 오늘도 늦은 밤 이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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